열린우리당 박명재 경북도지사 예비후보는 이번 지방선거에 나선 기간이 짧다. 그럼에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 왜일까? 박 후보는 부드럽고, 해맑다. 한 번 만나면 다시 만나고 싶어진다. 박 후보의 고교 친구이자 40년 지기인 작가 이문열씨는 "명재는 나를 능가하는 문학소년이자 따뜻한 친구였다."고 평했다.
또 사람들은 박 후보를 부잣집 아들 같다고 한다. 실제 그의 외모는 그랬다. 하지만 그의 인생 파노라마를 접하면 그저 놀라울 뿐이다. 가난부터 배웠다. 차관급까지 오른 그의 인생 이면에는 어린 시절 아픈 추억과 이를 극복해가는 힘겨운 여정이 녹아 있다.
그는 가난한 집안의 2남 3녀 중 장남이었다. 포항에서 초·중교를 수석으로 마쳤지만 고교에 진할할 형편이 못됐다. 당시 그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중학교 은사의 추천으로 상경, 낮엔 은사의 며느리가 운영하는 약국에서 점원으로, 밤엔 고교 야간부에서 공부했다. 대학(연세대) 생활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4년간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어야 했다.
부드러움 속에 강인함도 있었다. 연세대 정법대학 학생회장으로 활동할 당시 유신반대 시위를 벌였고, 덕분(?)에 군에 강제 징집됐다. 그의 야인적인 기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박 후보의 인생 대전기는 군 제대 후. 학창 시절 수석을 놓치지 않았던 그는 복학 7개월 만에 제16회 행정고시에 수석 합격했다. 박 후보는 "당시 7개월이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공부만 했던 때"라고 회고했다.
이후 박 후보는 청와대 행정비서관, 경북도 행정부지사,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 중앙공무원교육원장(차관급) 등 32년 공직의 길을 걸었다.
'부드러운 남자' 박 후보는 공직 시절 직원들에게 부드럽지만은 않았다. 치밀한 업무능력이라는 원칙을 남겼다.
지난 2001년 2년 동안의 경북도 행정부지사를 끝내고 떠날 때다. 도청 청사 앞에 "다시 돌아와요. 박명재."라는 플래카드가 나붙었다. 한 도청 간부는 박 후보를 두고 "역대 부지사 중 다시 모시고 싶은 상관"이라고 평했다. 이의근 지사 역시 "어려울 때마다 박 부지사가 어떻게 생각하고 일하는가를 배우라."고 직원들에게 강조했다는 것.
일하는 박명재는 김대중 정부 시절 전자정부 시대를 연 공로로 2002년 올해의 CIO(최고정보책임자) 대상을 수상했고, 동부지역 공공행정기구 수석부의장을 연임하면서 국제 행정 분야 전문가라는 명성도 떨쳤다.
이종규기자 jongk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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