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구연맹 회장 자격으로 독일월드컵조직위원회의 초청을 받아 독일을 방문하고 있다. 월드컵의 열기가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는 국내에 있다 이곳에 오니 의외로 조용한 분위기라 이상한 느낌마저 든다.
한국-토고의 경기가 열리기 전날인 12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하니 조직위서 팻말을 들고 나와 반갑게 맞이했다. 여느 때와는 달리 비행기가 강한 맞바람으로 예정시간보다 늦게 도착해 조직위에서 많이 기다린 표정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와는 달리 공항에 별다른 월드컵 안내 데스크가 설치되지도 않았고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 요란스런 의전 절차도 없었다. 공항을 빠져 나와 각국 VIP들과 조직위 초청인들이 묵을 호텔에 도착해서도 안전문제 외에는 까다로운 절차가 없었고 분위기 또한 차분해 보였다.
손님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마련되는 환영행사도 없었다. 다만 VIP 체육프로그램을 주면서 시간이 되면 조직위의 일정에 참여하고 피곤하거나 다른 일정이 있으면 응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호텔 방에도 월드컵에 관한 홍보자료 몇 점 외에는 특별한 선물이나 관심을 끌만한 게 없었다.
역시 근검, 절약을 최우선으로 하는 민족답게 손님들한테도 부담을 지우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홀가분했다.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 5시가 조금 넘어 깬 후 호텔 밖으로 나가 보았으나 전날 공항에서 느낀 것처럼 월드컵 특수를 느낄만한 분위기는 없었다. 그야말로 조용한 월드컵을 치루고자 하는 독일 국민들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다.
독일 사람들 대신 시내 곳곳에 붉은 티셔츠를 입은 한국 사람들만이 새벽부터 몰려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지구 어디서나 한국사람들의 월드컵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어쨌든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세계의 월드컵 문화를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은 자랑스런 일이다.
낮에는 조직위에서 마련한 행사에 참석,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고 베켄바워가 독일 국민의 영웅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후에는 거스 히딩크가 새로운 사령탑을 맡은 호주에게 패한 일본 응원단을 만났다. 고개를 숙인 채 질서정연하게 안내자의 뒤를 따라 시내를 다니는 일본인들을 보고는 과연 히딩크가 월드컵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내는 거장이라는 걸 다시 한번 인식 할 수 있었다.
한국-토고전이 열린 날에는 월드컵경기장 등 프랑크푸르트 시내 전체가 빨간색 티셔츠를 입은 한국 사람들로 들끓었다. 지하철은 한국서 온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경기장 안도 붉은 물결로 가득찼다. 경기장 관계자는 한국 응원단이 3만 명 정도라고 했다.
세계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 중 하나인 월드컵을 개최한 독일인들의 차분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도 이제 스포츠 대회를 손님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이벤트 행사로 준비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박상하 국제정구연맹 회장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李대통령, 대북전단 살포 예방·사후처벌 대책 지시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대통령실 "국민추천제, 7만4천건 접수"…장·차관 추천 오늘 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