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재벌 범죄 엄단 공언 '빈말'로 끝나나

현대차 '검은 돈' 행방 영원히 묻힐 듯

회사돈 797억 원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수감됐던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보석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자 또다시 재벌 앞에 약한 모습을 보였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 때문에 기업인의 대형 비리를 엄벌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던 법원의 공언은 무위로 끝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가 내세운 보석 사유는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이런 논리는 이용훈 대법원장이 지난해 9월 취임 이후 줄곧 밝혀왔던 기업인을 포함한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엄단 발언과 배치된다는 우려의 시각이 적지않다.

재판부가 밝힌 보석 허가 사유는 크게 ▷비자금 부분에 대해서는 대부분 형사책임을 인정하고 있고 ▷현대차그룹의 경영공백이 장기화되면서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취임 이후 대형 기업비리에 대한 엄벌 의지를 밝혔지만 일선법원의 모습은 거꾸로 가는 듯한 형국이다.

올해 초 서울중앙지법 1심 재판부가 회사돈 286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두산 총수 일가 전원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데 이어 이번에도 재계 2위의 현대차그룹 총수를 선처한 것이다.

정 회장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김동오 부장판사도 이런 점을 의식한 듯 "재벌 회장이기 때문에 법원이 특혜적 조치를 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때 힘들었다. 충실히 심리해 유죄가 인정되면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보석 결정이 내려진 피고인에게 통상 관대한 선고가 내려진 전례에 비춰 정 회장에게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댈지는 의문이다.

기업인의 대형 횡령·배임 범죄를 엄하게 처벌하지 않을 경우 일반인의 법 감정이나 법 질서에 대한 신뢰에 심각한 동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법원의 판단이 주목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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