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피터 드러커 교수를 만나러 갔던 것은 재작년 10월이었다. 그의 연세가 이미 95세가 된 때였다. 캘리포니아 L.A. 부근 클레어몬트라는 대학 도시로 찾아갔을 때, 그는 먼 한국에서 온 기업인과 학자들을 마치 친자식 대하듯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2시간이 넘는 인터뷰에서는 한국이 지난 30년간 이룬 경제적 성과와 미래 잠재력에 대한 덕담을 잊지 않았다.
그 때 막 나온 '데일리 드러커(오늘의 드러커)'라는 책에 일일이 서명을 해주면서, 점심까지 함께 하자는 것이었다. 마침, 폭우가 쏟아지고 부인 도리스 여사도 댁에 계시질 않았다. 어떻게 점심을 하자는 것일까 궁금해하고 있는데, 가까운 곳에 자주 가는 식당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95세의 연세, 게다가 워커라고 네발 달린 지팡이를 쓰는 노교수가, 폭우가 쏟아지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해 외출을 할 것이라고 상상도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폭우 속에, 식당에 도착해, 음식을 시킬 때도 그는 우리들 하나 하나에게 질문을 해가며, 각별한 친절을 베풀고 배려를 했다. 그래서 "어쩌면 그토록 오래 젊음을 잘 유지 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Life-long learning keeps people young' 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매사에 흥미를 가지고 평생 학습에 열중하다 보니 늙을 시간이 없었다는 말이었다.
점심이 끝났을 때도 폭우는 지속되고 있었다. 다음해 한국에서 창립되는 피터드러커 소사이어티 창립식에 꼭 오십사고 부탁 드리며 우리는 아쉬운 이별을 했다.
2005년 9월 창립식이 있던 날, 드러커 교수는 더 이상 여행을 할 수 없게 되어 아내 도리스를 대신 참석시켜 보려 했지만, 여의치 않아 축하 메시지만 보내주었다. 그리고, 두달여 후, 만 96세의 생신을 1주일 앞두고 별세했다.
그 6개월 후, 클레어몬트의 피터 드러커 경영대학원에서는 성대한 추모식이 있었다. 미국 내 500대 주요 대기업의 전·현직 CEO들과 세계적 석학들이 모여 그의 위대한 업적과 정신을 기렸다. 우리나라에서도 그의 추모식 겸 피터드러커 소사이어티 헌장 선포식이 지난 6월 7일 서울에서 있었다. 각계 전문가 CEO들이 수백명 참가하여,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이자, 평생학습을 통한 지식사회와 혁신주도적 기업가 정신, 그리고 제 3 섹터의 창조적 역할을 중시하던 드러커 교수를 추모하였다.
반갑고도 놀라왔던 것은 부인 도리스 드러커 여사가 94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추모식에 참석한 것이었다. 혼자 비행기 여행을 잘 한다고 했더니, 혼자 온 것이 아니고 180여명이 함께 왔다고 하였다. 우리가 놀랐더니, 타고 온 비행기에 함께 온 탑승객 수가 그렇다며, 장난스레 웃었다. 둘째날 아침 7시부터 시작된 조찬행사, 여러 번의 오전 인터뷰, 오찬행사, 오후 내내 지속된 추모식, 헌장 선포식 및 세미나, 그리고 뒤따른 추가 인터뷰가 밤 10시까지 15시간이나 지속되었건만 도리스 여사는 각종 행사 때마다 단아한 자세를 조금도 흩뜨리지 않았다. 우리는 그 건강과 정신력, 그리고 열정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어쩌면 40대 같은 젊음을 유지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또 한번 환히 웃으며, 당신의 기분은 29살이라고 하였다. 또 한바탕 우리 모두 폭소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리스 여사는 우리나라의 평생학습 열기, 지식사회로 가기 위한 노력, 피터 드러커 소사이어티의 CEO 독서클럽 등에 대해 크게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남편이 왜 한국을 그렇게 찬양하고 한국의 미래를 밝게 보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또한, 피터 드러커의 유지에 따라 당신이 피터드러커 소사이어티의 헌장 선포식에 직접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을 행복해 하였다.
도리스 여사는 4일간의 일정을 마치며, 못내 아쉬워했다. 우리도 같은 심정이었다. 갑자기 그는 내게 조용히 다가와 나무를 한국에 심고 싶다며, 두 그루 나무 값을 억지로 손에 쥐어 주었다.
그 순간, 피터 드러커 교수와 도리스 드러커 여사의 68년에 걸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그들의 한국 사랑 이야기가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들의 사랑과 지식사회에 대한 열망이 아름다운 두 그루 나무가 되어, 이 땅에서 영원히 지식과 사랑과 나눔의 숲으로 커 가기를 어느새 나는 기도 하고 있었다.
문국현 유한킴벌리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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