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지를 찾아서] 천주교⑤ 계산성당 (하)

태풍이 물러간 7월의 밤을 천주교대구대교구 주교좌본당 계산천주교회가 지키고 서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계산성당 위로 하늘의 영혼과 땅위의 착한 마음들이 만나 하나를 이루는 순간을 여름 밤 별무리들이 축복하고 있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믿으며 겸손하게 살아온 신자들이 올해로 120 년째, 계산성당을 지켜왔다. 바람에 스러지는 이름없는 들풀에도 창조주의 섭리가 스며있음을 알고 있는 신자들에게 계산성당은 영혼의 안식처이자 사랑이신 하느님과 대화의 광장이다.

◆ 복음의 산실이자 사적지

19세기 말부터 가톨릭을 전파하기 시작한 계산성당은 복음의 산실이다. 그래서 지역은 물론 부산 경남 지역의 순례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근데 그것만이 아니다. 계산성당은 종교를 초월해서 지역민들에게 사랑과 예술의 혼을 불어넣는 사적지(제290호)이기도 하다. 세상은 날이 갈수록 물질 위주, 재미 우선, 인간 본위로 흐르는데, 계산성당은 세상과 다른 말과 메세지를 던진다. 유한한 삶, 그 너머를 보라고 말이다. 만나면 헤어지고, 태어나면 죽고, 시작하면 끝이 있는게 인간의 운명이지만, 그를 뛰어넘는 영원한 평화와 생명을 얻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라고 말이다. 그래서 보시기에 참 좋은 삶을 살기 위해 계산성당의 사제와 교우들은 각종 빈민구제, 교육사업, 사회사업에 앞장서왔다. 1899년에는 대구 교회교육기관의 효시인 한문서당 해성재를 설립했다가 1908년 이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신학문 교육기관인 성립학교를 세웠다. 1909년에는 가톨릭청년회의 효시인 성립학우회를, 1912년에는 평신도사도직을 수행할 남방천주공교 명도회를 발족시켰고, 같은 해 '교회주보'를 창간했다.

◆ 뭇 사랑 베푸는 하느님의 집

1911년 대구대교구가 설정되고 곧 성 유스티노신학교가 설립(1914년 10월1일)됐다. 성직자묘지 축성(1915년11월1일)에 이어 그리고 폴란드 전쟁 희생자를 위한 모금(1916년 1월)과 러시아백성을 위한 헌금(1922년 10월10일) 운동을 폈다. 교회도 힘들지만 더 어려운 이웃과 사랑을 나눈 것이다.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대구분원이 설치·축성(1915년 10월15일)되면서 지역사회 봉사활동도 본격화됐다. 1931년 병원치료를 받을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치료와 약품을 제공하는 성요셉무료진료소를 개설, 1년에 무려 8천842명을 치료했다. 계산천주교회는 유유자적해보이지만, 본당 설정 이래 지난 120년 간 쉼없는 긴장을 안으로 삭이고 삭여낸 사랑의 성전이자 뭇 생명에게 소리없이 베풀면서 갚음을 바라지 않는 대구대교구의 심장이다. "나눠줄 재산이 없으니 가난이나 함께 나누자."는 초기 교회의 정신을 잃지 않고 있는 계산성당을 찾은 순례객들은 오늘 비록 내가 앉은 자리가 가시방석일지라도 꽃자리처럼 느끼며, 자기 십자가를 기꺼이 진다.

◆ 천재들이 모이던 골든 델타의 핵심

성당 한켠의 이인성 나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계산성당은 과거 대구 문화 예술인들이 모여들던 골든 델타의 중심지였다. 시인(상화와 고월), 화가(이인성과 서동진), 문인(백기만과 현진건 이효상), 독립운동가(이상정)와 서예가(박기돈 초대대구상공회소장) 국채보상운동 창시자(서상돈) 등이 계산성당 인근에서 숨결을 나눴다. 상화는 일제 탄압으로 가슴이 답답해지면 성당 마당으로 난 고택의 들문을 열고 바람을 쇠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가히 계산성당은 대구대교구의 심장이자 근대 대구문화예술의 산실이었다. 그러나 성당과 상화고택을 제외한 이 일대를 역사사적지구로 조성하지 못하고 개발논리에 떠밀려 원형을 훼손하게 된 것은 대구시민의 부끄러움이다.

계산성당(주임신부 이재수 시몬)은 연내 본당설정 120주년 기념 화보집을 내고, 가을 쯤에는 김남조 정호승 씨 등을 초청한 행사를 통해 새로운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신앙생활을 홀로와 더불어를 잘 조화시켜야함을 알고 있는 계산성당은 가을부터 연령층별 성서읽기·듣기·나누기·쓰기·외우기를 통해 새로운 미션을 수행해갈 예정이다.

최미화 편집위원 magohalmi@msnet.co.kr

사진·정우용기자 v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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