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또 불거진 체벌 논란](상)회초리 찾는 교사, 멍드는 아이들

최근 대구지역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가 학생들을 매로 수백대나 체벌해 학부모들의 항의가잇따르는 등 파문이 일자 해당교사가 사표를 제출하는 등 말썽이 되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 빚어지는 체벌에 대한 논란이 숙지지 않고 있는 것. 이에 학생들의 지도를 둘러싼 체벌로 피해를 보는 학생·학부모들의 입장 등에 대한 실태와 대책 등을 알아본다.

지역학교에 재직 중인 최모(38) 교사는 자신이 학생들 사이에서 '폭력 선생'으로 불린다는 것을 최근 알고 깜짝 놀랐다. 동료교사들이 꺼리는 학생지도 역을 떠맡아 자주 매를 들기는 했지만 폭력 교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초임 때 정말 학생들과 어떻게든 친근해지려 노력했던 적도 있었지요. 하지만 아이들은 점점 통제를 벗어나려고만 했고, 더 이상 말로는 힘들다는 것을 느꼈어요. 교실분위기는 점점 흐트러졌고, 학교에서 무능한 교사로 찍힐까봐 항상 불안했습니다."

그러던 중 최 교사는 우연히 들었던 회초리의 매력에 푹 빠졌다. 아이들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금세 말을 듣는 등 효과가 좋았다는 것.

지역 한 사립 고등학교에서 화학을 가르치는 정인화(가명·29·여) 교사도 지난해부터 매를 들기 시작했다. 3년차 여교사가 말만 가지고 아이들을 통제하기에는 너무 힘이 부쳤기 때문이다. 회초리의 효과는 그에게도 금세 나타났다. 그동안 체구가 작은 여교사라는 이유로 무시하던 아이들의 태도가 확 달라졌다는 것.

정 교사는 "체구가 한 뼘이나 더 큰 아이들을 훈계할 땐 혹시 달려들지 않을까 무섭기까지 했다."며 "다른 남자교사에게와는 달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말대꾸하고 반항하는 아이들 때문에 남몰래 운 적도 많았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교사들에게 체벌이 아이들의 통제수단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보험업계에서는 '체벌 보험' 상품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지난 2002년 예기치 못한 학교안전사고는 물론 체벌과 관련한 소송이 잇따르면서 교사들을 위한 구제책으로 '교원배상책임보험'을 마련한 것.

교총 회원복지사업팀 신현옥 부장은 "첫해에 2천여 명이던 보험 가입자가 올해는 10배인 2만여 명에 이를 정도로 교사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며 "학내 안전사고도 그렇지만 학생 체벌과 관련해 법정소송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빈발하면서 교사들이 앞다퉈 신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체벌은 아이들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만 남기고 있다. 체벌로 인해 아이는 반항심을 쌓고 급기야 교사를 향한 적개심까지 낳게 하는 등 심각한 양상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3년 전 고교 담임교사로부터 몽둥이 세례를 받았다는 김모(21) 씨는 졸업 후에도 대인기피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당시 교실이 너무 더워 무심코 상의 단추 두 개를 푼 것이 이유였다. "아직도 그때의 일이 악몽처럼 떠오릅니다. 왜 맞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선생님에게 항의하니 버릇없다고 더 맞았지요."

김 씨는 이후 말수가 확 줄었다.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려워지면서 학교 빼먹는 날이 늘어났다. 성적도 곤두박질쳤다. 병원 정신과를 전전하며 학교를 겨우 졸업할 수 있었으나, 대학 진학 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학교를 다시 뛰쳐나왔다. 세상의 모든 선생님이 보기 싫어졌기 때문이었다.

이번 체벌 보도 이후 매일신문사에 전화를 건 한 주부는 "수년 전 아들이 학교에서 체벌을 받은 뒤 교사를 싫어하고 학업성적이 떨어지는 등 애를 먹었다."면서 "지금은 열심히 사회생활을 하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다."고 전했다.

유보춘 종로정신과 원장은 "상식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과잉체벌을 경험한 학생들은 교사에 대한 반항심은 물론 적개심까지 표출하는 등 악순환만 낳는다."며 "고된 시집살이를 한 주부가 나중에 며느리에게 똑같이 고된 시집살이를 물려주듯 체벌은 또 다른 체벌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북의 한 초교 교사인 이영래(33) 씨는 "그동안 아이들에게 회초리를 드는 경우가 많았는데, 당장은 효과가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데 4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털어놓았다. 이 교사는 그러나 "요즘은 칭찬과 격려가 가장 큰 보약이라는 믿음으로 아이들을 대하니 수업 분위기는 물론 학업 성적도 더 좋아졌다."면서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흔히 학교에서 행해지는 폭력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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