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월 따라, 경기 따라...달력의 변신은 무죄

새해가 되기 전에 한두 권의 달력을 구해 벽에 걸어두거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선물로 전해주는 일은 언제부턴가 우리들의 미풍양속이 되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괜찮은 달력을 구하는 일이 어려워졌다. 경기가 호전되지 않으면서 기업들의 '달력인심'이 야박해졌을 뿐만 아니라 달력에 대한 인식 또한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달력의 추억

우리나라에서 달력이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은 1960, 70년대 경제발전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그때는 지방유지노릇을 하던 큰 양조장이나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려는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이력과 사진을 넣어 한장에 12개월을 함께 넣은 달력을 돌리는 것이 유행이었다. '고무신, 막걸리 선거'가 판을 치던 당시 달력 한 장 돌리는 것은 큰돈 안 들이고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꽤 괜찮은 사전선거운동 방법이었던 셈이다.

당시에는 달력을 만들어 배포하는 기업수도 적고 그 양도 많지 않아 좋은 달력을 구하는 일이 쉽지않았다. 그래서 달력 여러 권을 구해, 친지와 지인들에게 연말선물로 주면 인사치레라도 받을 수 있었다.

한 장짜리 달력과 더불어 매일 한 장씩 찢어내는 '일력'도 인기를 끌었다. 한때 대구에서만 30만 부 이상 인쇄돼 팔려나가던 일력은 요즘에는 2만 부 정도로 줄어들었다. 일력은 가로가 약 20㎝, 세로 25㎝쯤 되는 크기로 재질이 얇은 습자지로 만들어졌다. 예전에는 그런 얇은 종이가 귀해 시골에서는 화장실에서 휴지 대용으로 쓰거나 부엌에서는 기름종이 등으로 귀한 대접을 받기도 했다.

▶달력의 변화

요즘 달력에서 유명 탤런트와 영화 스타들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1970, 80년대 달력의 단골 모델은 스타들이었다. 문희와 남정임, 윤정희, 장미희, 김창숙 등등….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이들 스타들로 장식된 달력은 당대 최고의 인기를 끌었고 또 이들 스타들끼리는 1월달 모델이 되기 위해 치열한 물밑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요즘에는 일부 잡지가 부록으로 스타달력을 만들기는 하지만 유명스타가 달력모델로 나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맥주와 소주 등 주류회사는 여전히 반라의 여성모델을 기용한 '섹시코드' 달력을 제작하고 있다. 금복주도 이런 '관념'을 고수하고 있다. '야한' 달력이 술집분위기와 어울려 술꾼들의 술맛을 부추겨준다는 속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복주는 올해 18만 부를 제작, 대리점과 업소 등에 배포할 예정이다.

대기업들은 한국은 물론 전 세계의 유명관광지의 자연을 담은 풍경화나 유명작가들의 그림으로 만든 달력을 제작, 기업가치를 높이고 있다. 대구은행은 지난해 이인성 작가의 작품으로 달력을 제작했다가 올해는 12명의 작가를 선정, 다시 그림달력을 제작했다. 달력이 단순히 날짜를 보는 기능에서 미술작품을 감상한다는 차원으로 진화됐다는 점에서 매년 달력제작 단계에서부터 적잖게 신경을 쓰고 있다. 그래서 달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매년 5~6월쯤부터 그림을 선정하는 등 공을 들이고 있다.

▶달력과 경기

달력만큼 경기에 민감한 것이 있을까. 1996년 전국적으로 5천만 부 넘게 제작되던 달력부수가 올해는 3천만 부 안팎으로 줄었다. 대구지역에서는 지역경기가 위축되면서 중소기업이 제작하던 달력부수가 크게 줄었다. 제작단가를 줄이다보니 그림없이 날짜만 있는 밋밋한 달력이 많아졌다. 대성카렌다 김재국 사장은 "단가가 100원밖에 차이나지 않는데도 더 싼 달력만 찾는다."면서 "베푸는 마음으로 만들던 달력인심이 예전만 못하다."고 말했다. 고급달력의 비중이 전체의 15%밖에 안 되는 것만 봐도 이 같은 경제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또 하나 대기업들이 서울에서 제작해서 지방에 배포하는 것도 지역달력업체들을 위축시키기도 한다.

간단한 메모를 겸할 수 있는 개인용 탁상캘린더가 늘어난 것도 달력 감소의 한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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