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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봉오동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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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6월7일, 중국 吉林省(지린성) 和龍縣(허룽현) 봉오동 골짜기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우리 독립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다. 홍범도를 중심으로 한 독립군연합은 일본군 1개 대대를 봉오동 계곡까지 유인, 매복해 있던 900여 명의 독립군이 집중공격을 가했다. 일본군은 이 싸움에서 전사 157명, 중상 200여 명의 막대한 피해를 봤지만 독립군측은 전사 4명의 피해를 보는 데 그쳤다.

전투의 발단은 1920년 6월4일, 홍범도, 최진동의 연합 독립군 30여 명이 두만강을 건너 함북 종성군 강양동에 주둔하는 일본군 국경초소를 급습, 일본군이 이들을 추적했다. 하지만 독립군은 근거지인 북간도(지린성 허룽현) 삼둔자에 매복, 6월 6일 오전 10시, 독립군의 공격으로 일본군 60여 명이 사살됐다. 이에 일본군은 대대적인 토벌에 나섰고 독립군은 이미 험준한 고려령의 계곡지대인 봉오동에 은신하며 병력을 배치해놓은 상태.

6월 7일 오전 6시쯤, 일본군이 고려령 골짜기에 다다르자 독립군은 일본군에게 치고 빠지는 전법을 구사했다. 두 번이나 교전하는 척하면서 깊숙한 곳으로 일본군을 유인, 마침내 일본군 주력부대가 포위망 한가운데로 들어설 즈음 일제 공격으로 대승을 거두게 된다. 이후 4개월 뒤 청산리 대첩과 함께 독립군의 가장 큰 승리로 기록돼 있다.

▶ 1996년 음반 사전심의제 ▶ 1975년 유제두, WBA 세계챔피언 획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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