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미 FTA 문제로 정부나 농가 모두가 국내 농산물에 대한 걱정과 대책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FTA가 체결되기도 전인데 미국은 자국의 쇠고기 수입이 FTA 전체의 문제인 것처럼 강도높게 수입허용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러한 한미 FTA의 중심에 서 있는 쇠고기 문제는 미국이 가지고 있는 육우산업의 중요성에 비해 우리나라가 처한 한우산업의 취약성 때문에 국내 축산업의 존립까지도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우 쇠고기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즐겨 찾는 고유한 맛과 고품질로 인해 우리의 식탁에서 최고의 기호식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우쇠고기의 생산량은 연간 국내에서 소비되는 전체 쇠고기 소비량의 30%밖에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시중 유통량의 70%는 수입 쇠고기이거나 국내산 육우(젖소)고기인 셈이다. 수입 쇠고기를 판매하는 음식점 수가 70%가 돼야 하지만 시중에서 수입쇠고기라며 파는 음식점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같이 쇠고기를 찾는 소비자들은 한우인지 수입 쇠고기인지를 잘 알 수가 없기 때문에 한우 쇠고기의 고유한 맛의 차별성과 가치를 의심하게 된다. 한우의 가치에 대한 신뢰 상실은 한우 농가들로 하여금 FTA와 같은 국제무역시장의 변화에 당황하고 불안한 상황을 맞게 하는 주원인이 됐다.
조만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완전 개방되고 수입 쇠고기가 홍수처럼 밀고 들어오게 된다. 문제는 수입물량이 많아지는 것이 우리 소비자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 수입 쇠고기를 한우 쇠고기로 둔갑판매해 얻는 이익에 더 관심이 많은 업자에게 있다는 점이다. 이는 소비자와 생산자에게 그대로 고스란히 손실로 이어지게 된다. 시장에서 수입 쇠고기가 한우 쇠고기로 둔갑하여 소비자들에게 판매됨으로써 수입 쇠고기에 대한 질병이나 인체유해물질에 대한 불안감과 불신을 낳게 한다. 한우 생산 농민들에게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심리적 위축으로 이어져 더욱 산업의 장래를 어둡게 할 수 있다. 당장 한우 가격이 떨어지고 암소 도축이 늘어나는 등 축산농들의 의지가 꺾이고 있는 것이 그 방증이랄 수 있다.
한미 FTA에 맞서 한우산업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국가정책은 광우병과 같은 인수공통질병에 안전한 한우 쇠고기를 생산하고 한우가 한우로 판매되는 유통체계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러한 체계만 갖춰지면 한우는 분명히 경쟁력이 있고 더욱 성장할 가치와 가능성이 있는 산업이다. 질병에 안전한 순수한 한우 쇠고기를 속지 않고 먹을 수 있도록 생산, 유통, 소비 단계의 과학적인 체계를 마련, 송아지가 생산돼 식탁에 오르기까지(Farm to Table) 전 과정을 유전자(DNA) 분석 기술로 누가 어디서 어떻게 기른 것인지 이력을 알 수가 있도록 해야 한다. 한우 개체마다 유전적 확인이 가능한 이력체계는 사람의 주민등록증과 같이 선진화된 한우산업에 참여하는 농가들의 자부심과 긍지를 갖도록 할 것이다. 유통판매과정에서는 소비자들에게 안전하고 맛있는 한우쇠고기를 공급하여야 하는 기본적인 양심과 룰이 정착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이러한 체계를 갖추지 못한 외국 쇠고기의 수입도 제도적으로 제한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국내 쇠고기 시장에서 수입 쇠고기가 한우로 둔갑판매되는 악덕 상술을 뿌리 뽑아야만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해 온 한우산업이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일본 2위의 식품업체인 설인(유키지루시)식품이나 가와이사가 수입쇠고기를 일본쇠고기로 둔갑판매하다가 적발돼 즉시 폐업조치된 것처럼 명품 브랜드 제품의 '짝퉁생산'보다 건강과 직결되는 음식물의 '짝퉁판매'는 더욱 무겁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안전한 고품질의 한우 쇠고기는 국민들이 다소 값을 더 주더라도 기호에 따라 즐길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면 한우산업의 미래는 더욱 밝을 것이다. 물론 국제경쟁력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일본의 와규 쇠고기가 미국, 호주, 중국 시장에서 고가에 팔리는 것과 같이 한우도 국제적 명품반열에 들 수 있을 것이다.
여정수 영남대교수·경북 한우클러스터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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