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 대구에 막걸리 한잔하러 오게

가을장마가 극성을 부리더니 이제 무더위도 저만큼 멀어져 갔다. 아침 저녁 선들바람과 함께 주변 친구들은 강원도 봉평 막국수, 남해 횟집, 지리산 화개 재첩국, 경주 남산 콩국수를 즐기기 위해 음식여행을 떠난다고 부산하다.

그런데 우리 대구에는 어떤 볼거리와 먹거리가 있을까? 나는 가을·겨울·봄에는 멀리 있는 친구에게 대구 문화, 대구 관광 초청 편지를 띄운다. '대구 막걸리, 약령시 약차 한잔 하러 오게'가 서두다. 코스는 대구 도심관광이다.

한옥마을 진골목, 300년 내력의 약령시를 둘러보고 약령시 다방에서 약차를 마시고, 한약 박물관·제일교회 보존회·계산 성당·관덕정 순교기념관 주변의 식당에서 놋쇠잔 막걸리를 맛본 뒤, 이상화 시인 고택과 매일신문사 건너 3.1운동 고갯길을 찾아본다.

당시 계성학교 학생이었던 현제명은 이 고갯마루에서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뒷날 가곡 '고향생각'을 작사·작곡한 사연이 있다. 여기서 동산병원쪽으로 가면 옛 선교사 사택을 개조한 선교 박물관·의료박물관·교육역사박물관이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선교사 사택은 일부 대구 성돌로 만들어져 있고, 100년 수령의 사과나무를 볼 수 있는 잔디 벤치가 가까이에 있다. 건너편의 계성학교와 서문시장이 보이는 언덕으로, 옛날에 동산이라 불렀던 곳이다. 그 다음엔 초대한 친구를 태워 대구수목원을 두루 걸어보고, 화원의 인흥서원으로 향한다.

길 옆 개울이 시골 정취를 흠씬 느끼게 한다. 인흥서원의 명심보감 목판본, 인흥사 절터의 허물어진 석탑에서 삼국유사의 감동을, 문씨 세거지 수봉정사옆 인수문고의 만권 서책들을 보면 대구가 전통이 있는 문화도시임을 확신하게 된다.

호남에 있는 친구에게 초대편지를 띄웠다. '전주비빔밥도 좋지만, 왁자지껄한 칠성시장 노전의 나무의자에 걸터앉아, 인심 좋게 퍼주는 장터 보리비빔밥이나 서문시장의 수제비, 팔공산의 산채비빔밥은 어떤가'라고 유혹했다.

이번엔 그들은 팔공산 주변으로 안내한다. 원삼국시대 고분군·신숭겸 장군의 표충단·대구 방자유기박물관·자연염색박물관 등을 둘러보고, 북지장사·부인사·파계사·동화사를 찾는다. 장엄한 팔공산을 보기 위해선 역시 갓바위 산행이 제격이다. 관봉·노적봉·여의봉이 정기가 서린 곳이라는 해설을 해 준다.

강원도 친구에게 편지를 띄운다. '전통시장은 대구가 가장 크고, 현대 쇼핑센터도 대구가 중심'이라고. 서문시장·칠성시장·대백프라자·동아쇼핑 그리고 유통단지야 말로 쇼핑의 중심지가 아닌가. 나는 대구공항에 있는 관광정보센터의 단골손님이다. 영어·중국어·일어판과 한글 대구 안내서를 고루 챙겨 온다. 외국에, 외지의 친지에게 편지를 띄울 때 동봉하기 위해서다.

일본의 한 문인은 가창의 녹동서원과 임진왜란 때 귀화한 왜장 사야가(沙也可)의 묘소를 보고 싶다고 했다. 서원을 둘러보고 산소길을 올랐다. 가파른 산길을 20분쯤 오르니 숲으로 에워 쌓인 은둔의 언덕이 보였다. 70여년 대구에 살면서 김충선이라는 사성을 받은 장군 묘소를 처음 찾았다니, 그것도 일본 문인의 요청으로....

누구나 손쉽게 대구의 문화·정보·산업·관광정보를 접할 수 있어야 대구가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 서점이든 대구를 알리는 전위부대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대구를 찾은 관광객이 영어로, 중국어로, 일본어로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정보나 문화는 가까이 있어야 한다. 장터에서 국밥을 먹듯, 선술집에서 놋쇠막걸리를 마시듯, 일부러 정보센터를 찾지 않아도, 동네 서점에서 손쉽게 만나는 '대구가이드'를 대구 찾기 운동의 동반자로 삼아야 한다. 오늘도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현제명 고갯마루에서 대구를 바라본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고....' 아름다운 대구에서 놋쇠잔 막걸리을 다시 떠올려본다.

하오명(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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