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갈수록 뜨거운 영재교육 열기

단순 경쟁률만 7대1

▲ 대학, 교육청 영재교육원에 대한 학생, 학부모들의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14일 동성초교에서 치러진 동부교육청 영재교육원 1차 교내선발 시험.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 대학, 교육청 영재교육원에 대한 학생, 학부모들의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14일 동성초교에서 치러진 동부교육청 영재교육원 1차 교내선발 시험.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지난 9일 대구교육대학교 교정은 밀려드는 승용차로 몸살을 앓았다. 대구교대 영재원 신입생 선발을 위한 1·2차 시험이 있은 이날 대구·경북 총 1천여 명의 초등학생들이 시험을 치러 왔기 때문. 대학 측은 인근 남대구초교에 임시주차장까지 마련했지만, 이마저도 부족해 주변 도로, 골목이 차량으로 뒤덮였다. 대학 측은 "영재원에 대한 학생, 학부모들의 관심이 해마다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며 새삼 놀라워했다.

각 대학, 교육청이 운영하는 영재교육 기관들이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해가 갈수록 선발 시험의 경쟁률과 난이도가 높아지고 있고 '경대영재반', '교대영재반' 등 특정 영재원 입학을 위한 사설학원 강의까지 성황을 이루고 있다.

▶영재원 열기 뜨겁다

초등 5, 6학년 수학·과학·정보 등 3개 분야 신입생 175명을 뽑는 대구교대 영재교육원에는 총 1천120명이 응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 경쟁률로만 따져도 7대 1에 가깝다. 올해 신입생 선발 때보다 150명이 더 늘었다. 유성림 대구교대 교수는 "수학 전공반 경우는 경쟁률이 10대 1을 넘는다."며 "영재원 경력이 학교 성적이나 특목고 입학에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경북대 과학영재교육원에는 230명 내외의 초·중학교 과정 신입생을 최종 선발하는데 총 1천300여 명이 몰려들었다. 경북대 과학영재교육원은 대구의 다른 영재교육기관에 비해 시험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응시생들은 오히려 조금씩 늘고 있다. "이번 신입생 선발 시험은 예년에 비해 어렵게 출제했지만 지원 학생들의 전반적인 수준도 함께 오른 것으로 보인다."는 게 대학 측의 설명이다.

이런 가운데 대구의 각 구·군 교육청 영재교육원도 지난 14일 초·중학교별로 일제히 1차 시험을 치르면서 영재원 입시 열기를 더하고 있다. 학급당 1명 또는 0.5명씩 총 1천여 명의 신입생을 선발하는 교육청 영재교육원 1차 시험도 경쟁률이 3대 1을 훌쩍 넘는다. 동부교육청 영재원 수업을 맡고 있는 박병위 동호초교 교사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끼리 모여 있으면 자극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게 학부모들의 기대인 것 같다."고 했다.

영재교육원 수학 경험이 특목고 진학에 실제 유리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도 영재교육원 붐이 이는 이유다. 대구과학고 경우 최근 선발한 2008학년도 신입생 92명 중 60명(영재교육원 전형 22명 포함)이 최소 1년에서 3년가량 대학이나 교육청 영재교육원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고 측은 "매년 영재원 출신이 3분의 2가량을 점유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영재원은 고급 사교육 기관(?)

"영재교육원 입학 상담을 와서 6학년 아들이 벌써 수학 정석을 배우고 있다고 은근히 자랑하는 학부모도 계십니다. 하지만 영재원은 학원처럼 속진이나 선행학습을 하는 곳이 아닙니다."

영재교육 전문가들 사이에선 현재와 같은 영재교육원 붐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잖다. 영재원에 대한 학부모들의 왜곡된 인식을 해소하고, 영재 판별도구(시험)의 검증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유성림 교수는 "일부 학부모들 사이에선 이미 영재교육원 간에 서열을 매기고 자녀들을 모아 선행학습을 위한 그룹 스터디를 시킨다는 얘기도 들린다."고 걱정했다. 유 교수는 "영재원 입학생 중 상당수가 수학문제는 잘 푸는데 발표력은 현저하게 떨어지는 학생들이 많다. 이는 사설 학원에서 수학 문제를 푸는 기술만 익힌 탓"이라고 지적했다.

강용희 경북대과학영재교육원장도 "영재성은 이렇게 저렇게 고민을 거듭하면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가는 능력"이라며 "학원에서 미리 공식을 배우고 맞춤식 훈련을 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며, 설사 입학은 했더라도 곧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재교육원 합격 여부가 관심인 학생들로선 사교육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영재교육원 측의 원론적인 항변에도 불구하고 영재교육기관 입학을 위한 사교육 시장은 이미 활성화돼 있고, 영재교육원 입학 가능성과도 전혀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영재수업을 맡고 있는 최병훈 동성초교 교사는 "9일 교대 영재원 시험 당일 지원자 5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봤더니 상당수가 사설학원을 다녔고 영재원 합격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며 "영재교육원이 인재 조기 발굴이라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사교육을 조장하는 것은 아닌지 솔직히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 강용희 경북대과학영재교육원장

1998년 처음 문을 연 경북대과학영재교육원은 올해로 설립 10년째를 맞았다. 이곳은 현재 전국 25개 대학 영재교육원 가운데서도 비교적 초창기에 설립돼 영재 교육에 관한 체계적인 노하우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당연히 대구·경북 학부모들 사이에선 선호도 1순위다. 그러나 경북대영재교육원은 '영재원 입학용 사교육 시장'을 심화시켰다는 공과도 함께 지적되고 있다.

강용희 경북대과학영재교육원장은 "학부모들이 영재원을 고급 사교육 기관으로 오해하고 있어 안타깝다. 지원 전공만 봐도 수학이 가장 치열하고 물리, 화학 순이다."며 "학원을 5개 이상 다닌다는 일부 학생들의 얘기를 들을때마다 영재성에 대한 학부모들의 이해가 부족한 것 같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강 원장은 영재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번 시험 과학 문제 중에 미·적분 개념을 알아야 풀 수 있는 문제가 나왔다고 해서 학부모들의 반발이 심했어요. 하지만 곰곰히 따져보면 미·적분을 선행하지 않았더라도 학교 지식으로도 충분히 풀 수 있습니다. 그것이 미·적분인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더 발전시켜 문제를 해결해내는 능력이 바로 영재성입니다."

그러나 사설학원에서 선행을 통해 미·적분을 배운 학생과 영재성으로 문제를 푼 학생이 분간이 되지 않는다는 점, 오히려 학원을 다닌 학생이 합격에 유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한계다. 합격생 분포만 봐도 사교육 여건이 낫다는 수성구, 달서구 지원자가 70%를 넘었다. 강 원장은 "훈련받은 영재와 진짜 영재를 구별해내는 일이 큰 문제이긴 하지만 합격 이후 수업이 진행되면 확연히 가려지게 된다."고 했다. 그는 자녀를 영재로 키우려면 수학이나 과학에 정말 흥미를 갖고 있는지 살펴보고, 무한한 상상력과 독서 습관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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