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간을 위한 도시디자인] ⑧안내사인

사인물은 도시의 얼굴이다. 도로·골목길 표지판, 버스 사인탑 등의 안내 사인이나 간판 같은 옥외광고물이 도시의 얼굴 역할을 하는 대표적 사인물. 사람이 그러하듯 도시의 첫 인상도 얼굴에서 결정되기 마련이지만 대구 사인물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좋은 인상은커녕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반면 도시의 역사와 문화는 서로 다르지만 유럽과 일본의 안내사인과 간판은 인간을 위한 배려와 도시의 경관을 보전하려는 디자인 철학을 담고 있다.

◆안내표지판

브리스톨은 영국 사람들조차 잘 모르는 작은 도시지만 안내표지판 하나로 세계 공공디자인의 순례지가 됐다. 안내표지판만 따라가면 도시의 모든 곳을 찾아갈 수 있는 곳, 브리스톨이 꿈꾸는 유토피아다.

영국 런던 패딩턴역에서 기차를 탄 지 2시간쯤 지나 브리스톨역에 도착했다. 표지판 하나만 따라 브리스톨역~앳브리스톨(공공과학센터)까지 걸어 가기로 미리 작정한 터였다. 역을 빠져 나와 가장 먼저 찾은 표지판엔 방향표시 바로 밑에 지도가 새겨져 있다. 실제 위치와 방향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우리 표지판과의 가장 큰 차이점. 지도에서 위치와 방향을 확인한 뒤 다음 표지판을 찾았다. 방향이 헷갈릴 만하면 어김없이 지도가 달린 표지판이 서 있다. 언제쯤 도착할까 마음 졸일 일도 없었다. 브리스톨 표지판은 가까운 곳부터 순서대로 위에서 아래로 목적지를 표기한 뒤 각각의 방향을 표시한다. 맨 아래에 있던 앳브리스톨이 어느덧 제일 위로 올라온 순간, 바로 거기가 도착 지점이었다. 그렇게 브리스톨역~앳브리스톨까지 걸린 시간은 정확하게 20분. 표지판을 보지 않고 이미 알고 있는 길을 되돌아올 때와 아무 차이가 없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브리스톨의 안내표지판은 1990년대 중반부터 2002년까지 이어진 BLC(Bristol legible city:이해하기 쉬운 브리스톨) 프로젝트에 의해 탄생했다. 공공 디자인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영국 AIG사가 프로젝트를 맡아 인간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6곳 이하의 목적지만 표기하고, 사람들 눈에 가장 잘 띄는 서체와 색깔을 연구해 지금의 표지판을 제작했다. 역이나 정류장 주변 표지판에는 버스나 택시, 도보 사인 기호를 사용해 목적지까지 가장 편하게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을 설명하는 '배려'까지 담고 있다. 표지판과 함께 제작한 지도도 백화점, 관광 명소뿐 아니라 화장실 같은, 사소하지만 필요한 장소들을 함께 표기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이에 따라 2차 세계 대전 당시 폭격 때문에 어지러운 길로 유명했던 브리스톨 시는 세계에서 가장 길 찾기 쉬운 도시로 단박에 변신해 세계적 인지도를 쌓아 가고 있다.

◆버스 사인탑

영국 런던에서는 버스 타기가 즐거웠다. 맨처음 런던을 찾는 사람들도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버스 사인탑 때문이었다. 런던의 버스 사인탑에는 참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사인탑 맨위에 있는 알파벳은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를 뜻한다. 브리스톨의 안내표지판처럼 버스 번호 바로 밑에 지도가 새겨져 있고, 지도 내 정류장 위치마다 순서대로 알파벳을 표기하는 방식. 지도와 함께 알파벳별 노선까지 함께 표기하기 때문에 우리처럼 버스를 잘못 탈 일이 없는데다 사인탑만 잘 활용하면 내가 원하는 모든 목적지를 쉽게 찾아갈 수 있다.

버스 노선도도 우리와는 다르다. 색깔이 들어가 있지 않은 우리와 달리 런던의 노선도는 버스 번호별로 색깔이 모두 달라 내가 타야 할 버스가 한눈에 잘 들어온다. 거리에서 만나는 모든 시설물에 디자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 이것이 바로 '세계 디자인 수도'라 불리는 런던의 진면목이다.

영국 런던, 브리스톨에서 글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사진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후원:지역신문발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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