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목 호박에서
허기진 어머님을 읽다가
하룻날 메주 열두 장
하도 방이 넉넉하여
동짓달
기나긴 밤을
몇 번이고 헤아렸다.
진실로 진실로 어렵던
내 철이 든 나날을 두고
오늘은 비로소
천만 석 꿈을 누려
훨, 훨, 훨,
강산을 두루
鶴(학)으로는 못 날으랴.
잰걸음, 종종걸음 속에 설이 지나갔습니다. 설날은 元日(원일)인가 하면 愼日(신일)이기도 하죠. 설의 어원에 이미 삼가고 다잡는다는 뜻이 들어 있다니, 참 놀라운 일입니다.
작품의 문맥으로 봐 정월의 '하룻날'은 아닌 듯합니다만, 아무러면 어떻습니까. 허기진 그 시절의 풍경을 이렇게라도 한번 되새겨보는 게지요. 우리 어머니들은 그랬습니다. 윗목에 모셔둔 늙은 호박 몇 덩이를 겨우내 아껴 쓸 양식으로 삼고, 메주 열두 장이면 적이나 넉넉한 살림살이로들 여겼지요.
철이 들고 맞는 세상의 나날은 또 얼마나 가파르고 팍팍하던지요. 그 숱한 시름 죄 떨치고 훨, 훨, 훨, 깃을 치며 강산을 두루 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安分 知足(안분 지족)뿐.
혹, 장정문 시인을 궁금해 하는 이도 있겠지요. 고향은 김천. 196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두메꽃'으로 당선한 뒤 1976년 같은 제목의 시조집을 냈지요. 언제부턴가 통 뵐 수가 없어 산밭에 산그늘이 내리듯 하는 그 시품이 퍽도 그리운 시인입니다.
박기섭(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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