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기섭의 목요 시조산책] 하룻날/장정문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웃목 호박에서

허기진 어머님을 읽다가

하룻날 메주 열두 장

하도 방이 넉넉하여

동짓달

기나긴 밤을

몇 번이고 헤아렸다.

진실로 진실로 어렵던

내 철이 든 나날을 두고

오늘은 비로소

천만 석 꿈을 누려

훨, 훨, 훨,

강산을 두루

鶴(학)으로는 못 날으랴.

잰걸음, 종종걸음 속에 설이 지나갔습니다. 설날은 元日(원일)인가 하면 愼日(신일)이기도 하죠. 설의 어원에 이미 삼가고 다잡는다는 뜻이 들어 있다니, 참 놀라운 일입니다.

작품의 문맥으로 봐 정월의 '하룻날'은 아닌 듯합니다만, 아무러면 어떻습니까. 허기진 그 시절의 풍경을 이렇게라도 한번 되새겨보는 게지요. 우리 어머니들은 그랬습니다. 윗목에 모셔둔 늙은 호박 몇 덩이를 겨우내 아껴 쓸 양식으로 삼고, 메주 열두 장이면 적이나 넉넉한 살림살이로들 여겼지요.

철이 들고 맞는 세상의 나날은 또 얼마나 가파르고 팍팍하던지요. 그 숱한 시름 죄 떨치고 훨, 훨, 훨, 깃을 치며 강산을 두루 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安分 知足(안분 지족)뿐.

혹, 장정문 시인을 궁금해 하는 이도 있겠지요. 고향은 김천. 196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두메꽃'으로 당선한 뒤 1976년 같은 제목의 시조집을 냈지요. 언제부턴가 통 뵐 수가 없어 산밭에 산그늘이 내리듯 하는 그 시품이 퍽도 그리운 시인입니다.

박기섭(시조시인)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30일 방송에서 '당원 게시판' 사건과 관련해 자신의 가족이 익명 게시판에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를 비판한 게시글...
대구경북 지역 기업들의 체감경기가 업종별로 엇갈리는 가운데, 제조업은 소폭 개선된 반면 비제조업은 한 달 만에 다시 위축됐다. 한국은행 대구...
서울 강남에서 SNS로 만난 두 10대가 몸싸움 중 흉기를 휘둘러 한 명이 부상을 입었고, 경남 창원에서는 피의자가 이전에 흉기를 들고 여자...
올해 전 세계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간의 분쟁이 이어지며 국제 정세가 불안정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을 ..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