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물에 빠져보니 무섭기만 해

20여년 전 무더운 여름날, 대학 첫방학을 하고 친구들과 두류 수영장을 찾았다. 수영이라곤 전혀 할 줄 모르는 나는 그저 물장구치며 친구들과 노는 재미로 수영장에 들어갔다. 신기하게도 발을 약간 움직이고 손을 저으면 앞으로 나가는 것이 꼭 내가 수영을 할 줄 아는 것으로 착각을 할 정도였다. 친구들은 나름 수영을 좀 할 줄 알아 자신들 노는 것에 정신이 없었고 나는 얕은 물에서 장난치고 놀았다. 한 친구가 두류수영장은 가운데만 깊기 때문에 가장 깊은 가운데쪽만 헤엄쳐 지나가면 레인을 왔다갔다하며 놀 수 있다고 은근한 유혹을 했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가 갈 수 있는 최대한의 거리를 헤엄쳐 가 지금쯤이면 발이 바닥에 닿으려니 하고 일어섰는데 그대로 물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이었다. 수영을 할 줄 알면 바닥을 치고 솟아올라 숨을 쉬고 다시 출발했으면 되었을 것을 수영도 할 줄 모르고 당황하니깐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두세번 물속을 오르락내리락하며 헤매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팔목을 잡아채 얕은 곳까지 데리고 건져주셨다. 정신이 없어 고맙다는 인사도 못한 채 콜록거리며 마신 물을 뱉기에 바빴었다. 그 이후 수영장은 나와 상관없는 곳이 되었다.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휴가철이 다가오면 또 곤혹스럽다. 물이 무조건 무섭고 싫기에 바닷가고 계곡이고 물이 있는 곳엔 들어가질 않으니 모두들 시원하게 노는데 혼자 물에도 못 들어가고 그저 양산 아래서 땀을 뻘뻘 흘리며 백숙을 끓인다. 놀고 나와 출출한 사람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서 말이다.

내가 물에 대한 공포가 있기에 두 아이에게는 일찌감치 수영을 가르쳤다. 큰애는 학년대항 수영대회에서 1등을 할 만큼의 실력이고, 둘째는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일곱살부터 일년이 넘도록 수영을 다녀 이젠 제법 접영까지 자세가 나온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며 수영 배우기를 권하지만 나는 영 물과는 친해질 수가 없는 것 같다. 두 아이 수영을 가르쳐 놨으니 내가 물에 빠지면 구해주겠지.

황정인(대구 수성구 수성1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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