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한국영화 필름 35% 유실

안 세어 봐서 모르겠지만 약 4천~5천편의 비디오테이프를 소장하고 있다.

재킷 없는 복사본까지 합치면 7천편가량 될 것으로 짐작한다. 구입한 것도 있지만, 기증받거나 쓰레기장에서 주워온 것도 많다. 버리지도 못하고 한때 친구집 차고를 전전하던 놈들이다.

그런데 비디오테이프를 수집하는 방침이 있다. 철저히 소외된 영화만 모은다는 것이다. 해외 유명걸작이나, 국내영화 중에서도 끊임없이 회자되는 영화는 피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DVD로 출시되거나, 케이블TV에서도 끊임없이 방영되기 때문이다. 아무도 눈여겨봐 주지 않는 영화, 그것이 레어(희귀) 아이템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모으다 보니 야릇한 영화가 많아졌다. '껄떡쇠' 등 70, 80년대 에로영화들이 대부분이다. 시간이 되면 이들 영화를 리뷰해 보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90년대 한국영화붐이 이들 영화가 바탕이 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사회의 투영물이다. 당시 사회를 들여다보는 거울이다. 70년대 호스티스영화 속에 급격한 산업화의 폐해들이, 80년대 에로영화에선 숨 막히는 당시 사회에 대한 도피가 엿보인다.

그렇게 볼 때 영화는 우리 역사의 중요한 사료이다.

최근 국감 현장에서 191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제작된 한국영화 필름 가운데 35%가 국내에서 사라졌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접했다.

지난 16일 한국영상자료원이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이정현 의원(한나라당)에게 제출한 '국내 미소장 한국영화 현황'에 따르면 한국영화 5천901편 가운데 2천39편의 필름이 국내에 남아있지 않으며 특히 1950년대 이전 영화는 12%가량만 국내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영화의 태동기인 1910, 1920년대에 제작된 68편 가운데 한국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1919년)를 비롯해 단 한 편도 국내에서 발견되지 않아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1930년대 영화 73편 중에는 5편(6.8%), 1940년대 90편 중 14편(15.6%), 1950년대 307편 중 50편(16.3%)만 남아 있는 실정이다.

춘사 나운규의 '아리랑'(1926년)도 국내에는 필름이 단 한 컷도 없다. 몇 년 전 '아리랑'을 찾아 일본까지 가서 촬영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해방 전 영화를 많이 소장하고 있던 일본인은 영화창고만 보여줄 뿐 찾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볼 때 해외의 필름을 수집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한때 영화 필름으로 테두리를 장식한 밀짚모자가 유행했다. 필름을 뜯어 햇빛에 들여다보며 무슨 영화인지 궁금해 하기도 했다. 당시 돈 몇 푼에 희귀 영상자료들이 그렇게 모두 조각조각 잘려 소실됐다.

지금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사료에 무관심했던 가슴 아픈 우리의 초상이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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