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부추(?) 인생

'정구지'라고 잘 알려진 부추는 잡초처럼 잘 자라는 식물이다.

물만 적당하면 어떤 땅이든 뿌리를 내린다. 뿌리를 나누어 이곳저곳에 심어도 자라고, 봄에 파종하지만 여름이나 가을에 심어도 잘 자란다. 13℃만 유지되면 겨울에 심어도 된다니 정말 놀라운 생명력의 식물이 아닐 수 없다.

부추는 올라오는 대로 잘라 먹는다. 청양고추를 썰어 넣고 비 오는 날 부추전을 지져 먹으면 쌉싸래한 맛에 탁주가 절로 당긴다. 베어내고 물을 뿌려주면 또 거름을 밀어내고 올라오는 것이 부추다.

인생은 곧잘 浮草(부초)에 비유된다. 일본 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부초'(1959년)는 바람처럼 떠도는 유랑극단의 애환을 눈물겹게 그렸고, 한수산의 소설 '부초'(1976년)도 일월곡예단이라는 서커스 단원들의 일렁이는 삶을 그렸다. 뿌리 없이 부유하는 한 많은 인생살이가 부초에 담겨져 있다.

요즘 사는 것이 부초가 아닌 부추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옛날로 따져 보면 요즘 가장들이 못 버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벌면 솎아내고, 벌면 솎아내는 통에 늘 쪼들리는 것이 우리네 살림살이다.

예전에는 없던 씀씀이의 대표적인 것이 통신비다. 요즘은 초등학생만 되어도 휴대폰을 사줘야 하니 가족당 휴대폰 세 대가 기본이다. 거기에 집 전화 요금에 인터넷 통신요금까지 합치면 20만~30만 원이 더 나가는 셈이다.

자동차 밑에 드는 돈도 만만찮다. 기름값에 보험료, 세금, 주차료에 감가상각비까지 따지면 적게 잡아도 70만 원이 든다. 거기에 접촉사고라도 나면 목돈이 뭉텅 나간다. 자녀들 사교육비는 어떻고. 벌어도 벌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벌면 버는 족족 떼어줘야 하는 것이 자라면 자라는 대로 잘려지는 부추 같다. 부추를 잘라 먹는 거대한 세력이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의 '제7의 봉인'에 나오는 죽음의 사신처럼 거대한 낫을 들고 휘둘러댄다고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하다.

그런데 이젠 시스템 속에 갇혀 독야청청하기도 어렵다. 부추밭에 홀로 들국화가 될 수도, 채송화가 될 수도 없다. 그랬다가는 당장 뿌리째 뽑힌다.

부추전에 막걸리를 마시다 부초 같은, 아니 부추 같은 자기 인생을 보는 것 같아 목이 메는 가장이 요즘 한둘이 아닐 것이다.

김중기 문화팀장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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