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은 장편 소설 '향수'와 '좀머 씨 이야기'로 널리 알려진 파트릭 쥔스킨트의 처녀작 '콘트라베이스'는 콘트라베이스라는 악기가 가지고 있는 속성과 오케스트라에서의 신분적 위치 등을 그려내고 있다. 역할은 중요하나 아무도 그것을 선뜻 인정하여 주지 않는 것에 대해 느끼는 한 평범한 연주자의 절망감과,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안타까움을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필자 또한 콘트라베이스의 주인공처럼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고 오케스트라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기는 하나 남들이 잘 알아주지는 않는 흔히들 말하는 비인기 종목 악기인 '트롬본'을 연주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트롬본은 반주 악기로 알려져 있다. 오케스트라나 앙상블에서 주로 사용되며 독주 악기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최근 20년 안이며 그나마 독주무대는 참으로 만나보기가 드물다. 선율을 주로 연주하는 현악기나 목관악기에 비해 리듬 또는 화음들을 많이 연주하여 크게 눈에 드러나지 않는 악기이기 때문이다. 오페라 연주라도 맡게 되면 3시간가량의 공연에서 실제 연주 시간은 20~30분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나머지 시간은 그 연주시간을 위하여 열심히 쉬며 마디 수 세면서 대기해야 한다.
외부에서 트롬본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떠한가? 혹자는 첼로와 트롬본의 소리를 양주와 막걸리에 비유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트롬본도 독주가 가능한 악기인가요?"라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이런 비인기 악기의 설움 속에서 나름대로 독주무대도 가지고 트롬본 음악의 활성화를 위해 발악(?)을 떨어보기도 한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아픔 중 하나는 1등이 아니면 잘 인정해주지 않고 유명=성공, 무명=실패라는 논리가 사회 곳곳에 만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논리는 공연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대구의 공연 시장에서도 대형공연, 유명공연으로의 관객 쏠림현상이 깊어지고 있고, 지역예술인들이 참여하거나 중소형공연장에 올려지는 공연물들은 상대적으로 외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새해에도 수많은 공연들이 무대에 올려질 것이다. 이제 우리 공연을 바라보는 눈과 공연 관람 스타일을 바꿔보자고 권하고 싶다. 누구나 다 알고 이미 즐기고 있는 레퍼토리보다는 좀 생소하더라도 매력적인 프로그램, 누구나 다 아는 연주자보다는 실력과 개성이 뚜렷한 연주자가 있다면 그에게로 관심을 가져보자. 지명도에 의존한 대형공연에서 눈을 돌려 거꾸로 지역의 곳곳에 올려지고 있는 작고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내실 있는 공연들을 찾아 순례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
서상화 대구북구문화예술회관 기획담당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李대통령, 대북전단 살포 예방·사후처벌 대책 지시
대통령실 "국민추천제, 7만4천건 접수"…장·차관 추천 오늘 마감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