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기축년 새해를 맞아 여섯살이 된 '사랑의 쌀독'입니다.
동장군(冬將軍)이 기승을 부리는 요즘, 여러분들이 잘 지내시는지 걱정부터 앞서네요. 더욱이 10여년 전 외환위기 때보다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시기여서 올 겨울은 유달리 추우시겠지요.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로 위안의 말씀을 드리고 싶지만 경제 위기로 인한 매서운 찬바람에 한없이 움츠러든 여러분들의 몸과 마음을 보면 저도 마음이 아픕니다.
심란한 마음으로 세상사마저 귀찮아진 여러분들에게 제가 이렇게 편지를 올린 까닭은 무엇보다 오늘의 저를 있게 만들어준 여러분들에게 고마움의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지요. 그리고 여러분들과 함께 "이 세상엔 아직 따스함이 남아 있고, 분명 살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란 소중한 메시지를 공유하기 위해섭니다.
▶"아직 세상은 따뜻합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속담 가운데 "쌀독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지요. 살림살이가 넉넉해야만 비로소 남도 도와 줄 수 있다는 뜻이라더군요. 비록 6년밖에 살지 않은 어린 나이지만 저는 쌀독에서 인심만 나오는 게 아니란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쌀독에서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따뜻한 정이 끝없이 솟아난다"는 것을 저는 직접 몸으로 경험했고, 그리고 확고한 신념으로 간직하게 됐거든요. 재물이 자꾸 생겨 암만 써도 줄지 않는 것을 사람들은 화수분이라고 한다는데, '사랑의 쌀독'은 '온정의 화수분'이라 부를만하다고 저는 자부하고 있어요.
제가 드린 이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잘 이해시켜 드리려면 저 '사랑의 쌀독'이 태어난 이야기부터 해야할 것 같군요. 정확한 기록은 없다는 게 대구 달서구청 아저씨들의 이야기지만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난 해는 2003년 겨울, 출생지는 대구 달서구였어요. 그해 12월 달서구청 1층 현관 로비에 제가 첫 선을 보였지요. 달서구청 공무원으로 구성된 '사랑으로 행복한 사람들'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구청 직원들을 대상으로 쌀을 모으기 위해 고민하던 중 한 직원이 쌀독을 설치하자는 아이디어를 냈지요. 직원들은 저에게 정성이 가득한 쌀을 앞다퉈 쏟아부었고, 이렇게 해서 모인 쌀이 1천68kg이나 됐지요. 이 쌀과 구청 직원들이 직접 담근 김치를 어려운 이웃 100가구에 전달했지요.
사랑의 온기를 간직한 쌀을 담게 된 저 역시 마음이 따뜻해지더군요. 그리고 처음으로 쌀독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과 긍지를 느꼈어요. 2003년 이후 매년 연말이면 구청 현관에는 제가 자랑스럽게 자리를 잡았고, 온정을 간직한 쌀이 쏟아져 들어왔지요. 작년 연말에도 저를 통해 80포(20kg짜리)에 이르는 쌀이 모아졌고, 할아버지·할머니와 손자·손녀가 사는 가정에 쌀이 전달됐어요.
2004년엔 제 형제라 할 수 있는 '제2의' 사랑의 쌀독이 대구 달서구 월성동 한 아파트상가에서 태어났어요. 양곡점을 하던 한 아저씨가 주변의 어려운 어르신들을 돕기 위해 사랑의 쌀독을 만든 것이지요. 동생은 형인 저보다 조금 세련됐어요. 아저씨가 20kg이 들어가는 쌀독에 쌀을 가득 채워 놓으면 부근에 사시는 홀몸 어르신들이 필요한 만큼 쌀을 가져가도록 했지요.
이 아저씨가 사랑의 쌀독을 만든 이유도 눈물겹더군요. "얼마전 대구 동구에서 어린이가 굶어 죽었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어. 우리 동네에도 혹시나 쌀이 없어 밥을 굶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몰라 쌀독을 내놓았다"고 얘기하셨어요. 그 말씀을 들은 저 역시 마음이 아팠고, 아저씨의 고마운 마음에 가슴이 뭉클해지더군요. 쌀독에 붙인 "다들 어려우시죠. 뜨거운 밥 지어 드시고 힘내세요. 절대 미안해 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마세요"라고 적힌 글귀에서 아저씨의 따뜻한 마음이 묻어나더군요. 그러나 제 동생인 이 사랑의 쌀독은 아저씨가 지방의원에 출마하면서 부득이하게 어느 복지관으로 옮겨졌고, 그 이후에는 흐지부지되고 말았어요. 그 놈(?)의 선거법이 무엇인지 정말로 안타까운 생각이 들더군요.
▶'쌀은 사랑을 싣고!'
하지만 실망하지 마세요. 또 다른 제 형제, 자매인 사랑의 쌀독이 우후죽순처럼 태어났거든요. 대구 북구 칠성동에서 횟집을 하시는 한 아주머니는 식당 앞에 "넉넉하신 분들은 채워주시고 부족하신 분들은 가져다 쓰세요"라는 안내문을 붙인 쌀독을 내놓았고 이웃분들도 여기에 동참해 주셨지요.
그 뿐만이 아니었어요. 대구 중구 대신동 주민센터에 쌀독이 설치됐을 때엔 특별한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2포대, 3포대씩 쌀을 가져다 놓고 이름도 밝히지 않고 돌아가는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많았지요. 달서구 본리동과 죽전동, 서구 비산4동, 남구 대명3동 주민센터, 구미 양포동 주민센터와 고령군 다산면사무소 등에도 사랑의 쌀독이 만들어졌고 멀리 울릉도 복지회관에도 쌀독이 선을 보였지요. 사람들 사이에 어려운 이웃을 돕는 마음이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것을 보고 저는 큰 감동을 받았어요. 초등학생들이 심부름이나 집안일을 돕고 받은 용돈을 모아 쌀을 구입해 쌀독을 채워 더욱 훈훈함을 안겨줬지요.
사랑의 쌀독은 이후 '사랑의 연탄창고'로도 이어졌고, 축하행사 때마다 으레 전달하던 난이나 화환 대신 쌀을 주고 받아 어려운 이웃의 겨울나기를 돕는 '쌀모으기 사랑운동'으로 확산되었지요. 제 말이 믿기지 않으시면 매일신문 동정면을 한번 눈여겨 보세요.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쌀을 전달하는 단체가 하루 1, 2곳씩은 꼭 등장할 정도로 온정이 담긴 쌀을 전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지요. 어려운 이웃에게 기탁하는 물품을 종류별로 분류하지 않아 전달되는 쌀을 정확하게 집계할 수 없지만 대구 달서구청 아저씨들에 따르면 5, 6년보다 쌀의 양이 2, 3배 늘어났다고 하더군요.
쌀을 뜻하는 한자인 미(米)를 풀이하면 숫자 팔(八)과 십(十), 그리고 다시 팔(八)이 합쳐진 팔십팔이란 뜻을 담고 있다더군요. 농부의 손길이 88번을 가야 쌀이 만들어진다는 의미가 담겼다지요. 이제 저 사랑의 쌀독은 88에다 하나의 의미를 더 얹고 싶어요. 바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지요. 이제 쌀은 단순하게 식량의 하나가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을 전하는 가교이자, 삭막한 이 세상에 온기를 전하는 화롯불 같은 존재라고 저는 생각해요. 이렇게 되기 까지는 이웃을 위해 발벗고 나선 이름 없는 아저씨, 아주머니, 그리고 초등학생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큰 힘이 됐지요.
겨울 바람이 춥군요. 몸이 추운 것은 불로 쫓을 수 있지만 마음이 추운 것은 사람의 정으로 녹여야 합니다. 저 사랑의 쌀독을 통해 이 세상에 한층 더 사랑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계세요. 2009년 기축년 새해, 사랑의 쌀독 올림.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