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래플스병원. 내부에 들어서면 차도르를 쓴 이슬람교도들에서부터 중국인, 미국인이 발디딜 틈 없이 북적거려 마치 국제공항에 온 듯하다. 이 병원은 높은 의료수준과 저렴한 비용으로 연간 2만여명의 해외 환자를 유치하고 있다.
1995년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일본 고베시. 침체된 경제 복구와 의료복지의 질을 높일 목적으로 고베시의 주도와 정부의 지원하에 1999년부터 의료산업도시를 추진했다. 2003년 첨단의료특구로 지정돼 임상과 중개연구에 초점을 두고 임상시험, 세포 및 유전자 치료, 의료기기 분야를 집중육성했다. 그 결과 2005년 약 4억달러의 경제효과를 가져오고 1천200만달러의 세수증대를 안겨주었다. 2020년쯤엔 16억달러의 경제효과와 4천900만달러의 세수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고베 의료산업의 급성장은 고베시의 산업중심축을 바꿔놓았다.
삼성경제연구소 강성욱 연구원은 "의료서비스가 글로벌화되고 IT 등 첨단산업이 의료산업에 융합접목되면서 세계 의료산업이 혁명을 맞고 있다"고 했다.
◆세계는 의료산업으로 재편=호주는 지난 2006년 다국적 임상으로 건당 50만달러씩 2천건 이상을 유치해 10억달러를 벌어들였다. 화이자는 'Lipitor' 신약 단일 품목으로 2004년 120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신약승인 건수에서 합성신약을 추월한 바이오 신약의 세계시장 규모만 2005년 729억달러에서 2010년 1천404억달러로 연평균 14% 성장이 예상된다.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한 u-헬스는 인구의 고령화, 만성병의 증가로 수요가 증대, 연평균 25%씩 성장할 전망.
합성신약의 강자인 화이자는 최근 1천건 이상의 M&A(인수합병)와 전략적 제휴를 통해 초(超)대기업으로 거듭났다. 필립스도 한국의 디스플레이 등 제조분야를 과감히 던지고 수십건의 M&A를 통해 의료기업으로의 구조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이는 첨단기술의 융합산업이자 인류 최후의 산업으로 부각되는 건강의료산업을 선점하기 위한 대비다.
세계 1위 업체인 존슨앤존슨의 매출액은 2006년 기준 약 13조원(세계시장의 8.4%)이며, 10위권 업체의 매출액은 4조원 이상이고, 20위권 업체는 1조7천억원 정도다. 국가별로는 미국이 13개, 독일이 3개, 일본이 2개, 네델란드·스웨덴이 각 1개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 1위 업체인 메디슨의 경우 1천7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의료산업은 신약개발, 의료기기, 서비스, 임상 등 부문별로도 세계 시장규모가 엄청나고 부가가치 역시 제조업과 단순비교해도 10배가 넘는다.
◆한국은 뒤늦게 눈떠=국내 의료산업은 위기상황에 직면했다. 고가 의료기기와 신약개발은 선진국의 글로벌 기업이 지배하고 중저가 의료기기와 의약품 시장은 중국, 인도 등의 맹렬한 잠식으로 한국은 제조업에서처럼 '샌드위치'신세를 맞고 있다.
국내의 신약 제약품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중·저가제품은 중국 등 후발국에 비해 경쟁력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 다국적 기업의 국내 의약품 점유율은 2006년 35.8%로 갈수록 커지고 있고, 고가 의료기기는 다국적 기업이 국내 시장을 100% 독점하고 있다.
의료산업은 '국경'이 파괴되고 있다. 의료관광과 임상, 연구분야 경우 다국적 기업들이 2000년 이후부터 글로벌 네트워크를 꾸준히 구축해왔다. 최근엔 의료기기 제조·R&D 분야에서 중국 진출이 두드러지고 있다. 존슨앤존슨의 경우, 상하이에 생산기지를 건설했고 옴론, 지멘스, 필립스, GE도 베이징, 상하이 등지에 생산기지를 건립하면서 사업영역을 확장 중이다. 특히 GE는 고급제품에 대한 연구개발, 생산, A/S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중국 현지화를 하고 있다.
호주, 일본, 태국, 말레이시아 계열 병원들은 싱가포르에 베이스를 두고 전략적으로 해외 환자를 유치하는 등 의료기관 간의 국제 네트워크화 및 다국적 기업화가 활발하다.
대구경북연구원 장재호 신산업팀실장은 "의약품과 의료기기 등 의료산업은 앞으로 IT산업을 추월하는 최대 핵심산업이 될 것"이라며 "정부는 물론 대구경북도 의료산업 육성을 본격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구, 한국의 '의료허브'로 가자=영남대 이재훈 교수는 "대구권도 일본 고베시처럼 풍부한 기존 의료인프라를 활용하고 첨단의료복합단지를 유치해 의료산업을 육성하면 한계에 부닥친 기존 제조업의 구조전환을 돕고 장기적으로 튼실한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가 의료산업도시로서의 첫 출발인 만큼 성공한 의료클러스터를 벤치마킹, 단지 유치를 위한 정밀한 전략을 짜야 한다고 지적한다.
군사도시였던 미국 샌디에고 바이오 클러스터의 경우 1977년 지역 최초의 바이오 기업인 하이브리테크(Hybritech)가 창립되면서 생명과학연구활동의 중심으로 거듭났다. 하이브리테크를 모태로 50개가 넘는 바이오 기업을 유치, 창설해 현재 4만여명의 연구자가 일하고 있다. 이는 관련 주체들 간의 협력과 기업지원이 가장 잘되는 클러스터로 평가받았기 때문에 의료클러스터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의료기기 클러스터로 유명한 미네소타는 1949년부터 의료기기에 대한 연구, 개발, 제조에 역점을 두고 산업을 발전시켰다. 2005년 기준, 캘리포니아 주에 이어 미국에서 두번째로 많은 인원(2만5천명-전체 의료기기 종사자의 8%)이 의료기기업체에 종사하고 2007년 기준 의료기기 관련 회사 828개와 약 4만5천명이 의료기기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이곳은 전자의료기기 제조, 일반의료기기 제조, 수술관련기기 제조에 특화를 해왔다.
아시아권의 경우 일본 고베 의료산업도시는 120개의 관련 기업이 입주, 고베시의 강력한 지원, 관계기관 간 협력과 공동연구로 시너지를 내 아시아권의 대표적인 의료클러스터가 됐다.
이춘수기자 zapper@msnet.co.kr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