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주 기계천 美전투기 총격 사건' 피란민인줄 알고도 쐈다

1950년 민간인 총격 사건 , 진실화해위 비밀해제 미공군 문서 확인

'피난민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되돌아가 강을 가로질러 50구경 기관총을 소량 발사했음.'(Appeared to be refugees so drove back across river with small birsts of 50 cal)

1950년 8월 14일자 미 공군 '임무보고서(Mission Report)'에 기록된 내용이다. 이 보고서에는 미 공군 제18전폭기단 소속 제39전투편대가 피난민이 모인 강둑에 기총사격을 했다고 기록돼 있다. 그 강둑은 바로 경주시 강동면 안계리 기계천 일대다. 미 공군은 폭격 대상자가 피난민임을 알고도 폭격기에서 기관총을 쏜 것이다.

'경주 기계천 미군폭격 사건'이 59년 만에 미군의 일방적인 폭격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규명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는 최근 '경주 기계천 미군폭격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이 내려졌다고 유족회(회장 이원우)에 통보했다. 유족들의 당시 정황 설명에다 비밀 해제된 미 공군 문서의 기록이 진실규명에 결정적인 단서가 된 것이다.

유족회에 따르면 기계천 북쪽 수북지역(안계, 양동, 단구, 다산) 주민 200여명은 1950년 8월14일 새벽 인민군들이 동네 인근까지 쳐들어왔다는 소식에 피난길에 올랐다. 이날 오전 7시쯤 피난민들이 기계천 제방에 몰렸을 때 미군 정찰기 한 대가 강동면 상공을 20분가량 선회하다 사라졌고, 한 시간쯤 뒤 미군 폭격기 5, 6대가 다시 날아와 기총사격을 퍼부었다는 것. 유족회는 당시 아비규환 상황에서 70여명이 폭격에 의해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까지 신원이 알려진 사망자는 35명이다. 이원우 회장은 당시 폭격으로 아버지, 어머니, 형을 잃었다.

이 회장은 23일 "지난 2002년부터 경주시, 행정자치부, 국방부 등지에 수차례 진실규명을 요청하는 민원을 냈는데, 8년 만에 진실이 규명돼 그나마 다행"이라며 "앞으로 미국의 공식사과, 명예회복 등 후속조치가 이뤄질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대구경북에서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한 미군 관련 희생사건은 모두 40건이지만, 관련 자료와 증언 등을 통해 진실규명 결정이 난 것은 이번 기계천 사건을 비롯해 포항 흥해읍 흥안리, 예천 보문면 산성리 사건 등 3건에 불과하다. 그나마 3건이 진실규명 결정이 났지만 미군의 사과와 배상, 군·경에 대한 평화교육, 희생자 위령사업 등 후속처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회장은 앞으로 유족회가 명예회복 등을 위해 ▷미 대통령과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탄원 ▷세계인권위원회에 진실규명 촉구 ▷미국 등 해외언론 홍보 ▷위령사업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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