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추억의 직업]<2>주산·암산…"영재 교육" 10년만에 화려한 부활

12일 오후 대구 달서구 이곡동 수학학원. 이 학원은 수학과 주산을 병행하며 월, 수, 금요일마다 주산을 가르치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12일 오후 대구 달서구 이곡동 수학학원. 이 학원은 수학과 주산을 병행하며 월, 수, 금요일마다 주산을 가르치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고사리 손들이 섬세하게 움직인다. 혹여 알이 튕겨 주판이 흐트러질까 조심스럽다. 이름을 물어도 답이 없다. 계산을 끝내고서야 "박주현"이라고 답한다.

13일 오후 대구 북부초교의 방과 후 '주산' 교실. 배운 지 3개월 만에 두 자릿수 계산을 척척 해내는 1학년 주현이를 비롯해 21명의 1, 2학년생들이 주판알 튀기기에 여념이 없다. 계산 중에는 절대 말을 해선 안 된다.

3년째 북부초교에서 주산을 가르치고 있는 김영옥(40·여) 교사는 "북부초교에만 52명의 학생이 주산을 방과 후 교실로 선택했다"며 "방과 후 교실에 참여한 학생 10명 중 1명이 주산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준 교장은 "주산이 컴퓨터에 이어 두번째 인기가 높은 프로그램"이라며 "주산 교육을 받았던 부모 세대의 권유가 주산 붐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999년 10월 국가기술자격법 시행령 개정으로 국가기술자격 검정시험에서 제외된 주산. 2000년 5월 마지막 시험 후 수백개에 달했던 대구 주산학원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자취를 감췄다.

그 후 10년. 전자계산기와 컴퓨터에 밀려 사라졌던 주산이 부활하고 있다. 두뇌 영재 교육이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다. 수학·암산 능력을 높이는 데 주산만한 게 없다는 것이다.

지난 8월에는 대구산업정보대에서 제1회 전국 주산·암산 수리영재 대회까지 열렸다. (사)한국주산암산수학연구회 대구본부가 주최·주관한 대회는 기초 수리 교육에서 주산·암산 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대회장을 맡은 정순천 대구시의원은 "당초 200명 정도가 참여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600명 이상 참가해 무척 놀랐다"며 "내년에도 대회를 치르겠다"고 했다.

주산 강사도 부활하는 직업 중 하나가 됐다. '주산활용 수학교육사'라는 이름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간한 '세월따라 직업따라'는 부활 직종의 대표주자로 주산 강사를 꼽았다. 유관단체도 여러 개다. (사)전국주산수학암산교육회, (사)한국암산수학학회, (사)한국주산암산수학연구회, (사)대한주산암산연구학회, (사)한국주산협회, 국제주산암산연맹 한국위원회 등이 주산 부활에 나서고 있다.

대구의 주산학원은 현재 200곳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학원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학원당 20~80명의 학생들이 수강하고 있다. 방과 후 특기적성 교실이 마련된 초교도 100곳이 넘는다. 개인교습으로 배우는 이들까지 합하면 대구에서만 2만명이 넘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주산은 초교생들이 반드시 거쳐야할 관문이었다. 1955년부터 시작된 문교부(현 교육과학기술부) 주관 주산시험 합격자를 포함해 지난 45년간 주산 자격증 취득 인원은 442만1천577명에 달한다.

당시 주산국가기술 자격증은 취업을 희망하는 상업 고교생들에게 필수 사항으로 인식돼 1989년 한 해 응시생만 109만4천756명이나 됐다. 하지만 1996년 10만5천410명을 마지막으로 10만명 선이 무너졌고 2000년 5월 마지막 시험에서는 응시자가 399명에 그쳤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상업고교 정규과목에서 주산이 사라졌고, 컴퓨터 보급을 권장하는 문교부의 방침은 주산학원 폐업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주산학원은 컴퓨터학원이나 속셈학원 등으로 간판을 갈아야 했다.

그랬던 주산이 이제 학원뿐 아니라 시·군 등 각 지역 문화센터와 학교의 방과 후 학습 등을 통해 되살아나고 있다.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교육자를 양성해내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주산활용 수학교육사, 주산암산 교육사 등 민간 자격증도 생겼다. 대학에서도 주산암산 지도자 강좌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영남대, 대구가톨릭대 등 대학에서도 주산활용 수학교육사 교육 과정을 개설해놓고 있다.

2006년부터 주산활용 수학교육사가 되려는 성인들에게 주산을 가르치고 있는 김진희(44) 교사는 "수강자는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 여성들이지만 간간이 남성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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