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가을 아침. 안개 낀 길은 희미하다. 보이는 것들은 윤곽이 흐릿하고 이정표는 제구실을 못한다. 거북걸음으로 나아가는 앞길은 막막하다. 급히 갈 일이야 없지만 더듬듯 가는 길은 오히려 불안하다. 더구나 미망에 젖어 경주 남산을 찾아가는 사람의 마음은 더욱 초조하고 아득하다.
경주 남산은 경주의 진산이다. 북쪽 금오봉(468m)과 남쪽 고위봉(494m)을 두 축으로 신라 도읍 남북으로 깊숙이 엎드린 한 마리 금거북. 순교한 이차돈 이래 신라인들은 남산에 그들의 염화세상을 구현했다. 그리고 신라인들은 기복과 안녕, 참 자아를 찾아 기꺼이 이 불국토를 올랐다.
그 옛날 신라인의 정토(淨土)에는 오늘도 세상에서 '잃어버린 나'를 찾아 나서는 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오늘, 안개 속 길을 헤맨 중생이 '내 안의 부처'를 찾아 신라의 진산, 경주 남산을 오른다.
◆안개 속을 헤매며 오른 남산
안개를 밟으며 신라불을 친견하고 내 본래 모습을 찾고자 나선 순례길은 삼릉에서 출발해 금오산 정상에서 이영재로 방향을 틀어 반대편 칠불암 계곡으로 내려오는 코스로 잡았다.
등산화를 조여매고 들어서는 삼릉 숲길 옆에는 껍질이 투명해가는 사과들이 가지가 휘도록 오지게 달렸고, 남새밭 무는 시퍼런 무청 아래 허벅진 아랫도리를 드러낸 채 땅속 깊이 뿌리를 박고 있다. 구붓구붓한 소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삼릉 세 봉우리는 시간의 흐름 따위는 내 알 바 아닌 양 무덤덤하다.
냉골 골짜기로 10여분 올랐을까? 아연 나타난 좌상석불. 아뿔싸 이 무슨 해괴한 일로 부처님 머리가 없는가? 먼 옛날, 고려시대가 끝나고 조선이 개국하던 시절, 사람들은 불교를 누르고 유교의 나라를 세우고자, 절에 불을 지르고 부처를 뒤집고 중들을 산에서 몰아냈다고 한다. 냉골의 부처님도 그때 해를 입었는지, 아니면 변란을 겪으며 해를 입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여하간 억만겁 서원(誓願)해도 못다 풀어낼 이 업보를 어찌하려고 사람들은 이런 망측한 일을 저질렀는지…. 불두 없는 불상 앞에 합장을 하니 인간들의 죄업으로 '아미타불'이 저절로 되뇌어진다. "아미타불. 축생과 같은 업보를 멸(滅)하여 주소서."
다시 5분여를 더 오르다가 주 등산로를 벗어나 샛길로 몇 걸음 옮기면 자연 암반의 표면에 새겨놓은 서로 이웃한 두 선각삼존불, 즉 육존불을 만날 수 있다. 경주박물관장을 지낸 혜곡 최순우 선생은 이 육존불을 두고 '유려한 선의 흐름만으로 이루어져 회화라고 해도 좋을 것'이라며 '신라시대의 드로잉을 생생하게 보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그림을 눈앞에 두고도 그림을 보지 못할 뿐이다'고 청맹과니 후학들에게 일갈했다. 선각(線刻) 육존불 앞에는 초등학생 아들과 아버지가 나란히 서서 합장을 하고 있다. 예를 올리는 이들에게 '유려한 선' 운운하는 것은 불경스런 짓이다. 오늘 예불 올린 덕으로 국어 시험점수 한 점이라도 더 받길….
다시 주 등산로로 나와 3분 정도 산길을 오르다가 작은 계곡 건너편을 가리키는 안내판을 따라가면 보물 제666호 석불좌상이 나온다. 이 삼릉골 석불좌상은 남산의 어느 석불에 비해 단정한 모습으로 크기나 균형면에서 단아한 세련미를 보인다. 그러나 고태미(古態美)는 느낄 수 없고 마치 최근에 깎은 듯하다. 이 부처불은 얼굴과 광배 등이 크게 훼손되어 보수하여 다시 앉히는 중이다.
삼릉계곡 석불좌상을 친견하고 다시 주등산로로 들어서면 남산의 골골이 유물이고 봉우리마다 유적임을 실감한다. 그러나 발끝만 보고 땀 흘려 산 오르기에만 열중하면 그 보물들 절반도 못 보고 놓치기 십상이다. 고개 들어 솔숲 사이로 하늘 맞닿은 데 절벽 위를 쳐다보면 그곳에서 또 거대한 선각(線刻) 부처님 한 분이 두 눈을 내려 감고 굽어보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선각이 워낙 희미하여 가늠하기 힘들지만 선각마애불을 보는 순간 경주 남산에서는 부처님 옷자락 안에 있음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한 뼘도 안 되는 가소로운 길
제법 가파른 계단길을 15분 정도 걸으면 자그마한 암자 상선암을 만나게 된다. 상선암에서 몇 발짝 올라 거의 능선 위로 올라설 무렵이면 경주 남산 대표사진으로 자주 등장하는 부처불, 마애석가여래좌상을 만나게 된다. 거대한 절벽, 경주의 서남향을 굽어보는 석가모니 부처불의 온화한 미소에서는 사바세계 중생을 보살피는 그윽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부처님 전에 합장하고 돌아서서 능선에 올라서면 직사각형의 거대한 바위군이 가로막는다. 예로부터 상사병 앓는 이들이 이곳에서 치성하면 효험을 본다는 이름하여 '상사'(相思)바위. 바위의 동쪽 면에는 깊이 한 자 정도 감실이 파여 있고 늘 촛불이 밝혀져 있다. 사랑의 병을 앓는 사람들이 빌기라도 한 걸까?
상사바위를 돌아 금오봉 쪽으로 옮기면 낭떠러지 위 탁 트인 풍경이 펼쳐진다. 경주의 원경이 펼쳐지고 겹겹 산너울들이 이랑진 모습이 잡혀온다. 아득한 풍경에서 우리가 그렇게 급히 달려오고자 했던 곳이 한 뼘도 되지 않는 것을 알고 가소로운 생각이 든다. 비로소 '나를 내려 놓는다'(放下着)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듯하다.
경주의 동과 서의 풍광을 느긋이 즐기며 능선을 따라 금오봉 정상을 오른다. 숲 속 길은 오래된 화강암이 잘게 분열하여 싸락눈이 밟히듯 기분 좋다. 다시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는 능선을 따라 발걸음을 이영재 쪽으로 옮겼다. 이영재에서 다리쉼을 하려니 두 명의 서양 여성이 먼저 그늘에서 쉬고 있다. 프랑스에서 온 그녀들은 한국미의 진수를 찾아 통도사와 경주 남산을 여행하는 중이라고 한다. 그들이 들고 있는 프랑스어 안내서에는 남산에 대한 다소 긴 설명이 실렸다.
프랑스에서 찾아올 만큼 능선길에서 만나는 바위와 나무들은 어느 하나 명물이 아닌 것이 없다. 이영재에서 '봉화대능선'을 따라 걷는 길. 부드러운 마사토 위에 박힌 둥그스름한 바위는 푸근하고, 바위틈에서 악착스레 뿌리박고 자란 소나무들은 앙증맞다.
불국사는 어디쯤일까 멀리 조망하며 조심스레 바위 틈새를 비집고 내려서니 '신선암'과 '칠불암'이란 팻말이 서있다. 우선 횡으로 난 신선암 쪽으로 발길을 뗀다. 발 아래로 낭떠러지가 이어지고 나무계단에 안전펜스가 둘러져있다. 절벽 위를 조심조심 돌아 커다란 바위를 10여m 가니 막다른 길. 이상하다 싶어 뒤를 돌아보는 순간, 이럴 수가! 절벽에 새겨진 온화한 모습의 보살님이 미소를 짓고 계시지 않는가. 보물 제199호 마애보살반가상. 풍만한 얼굴에 오른손에 꽃가지를 들고 왼손은 가슴까지 들어올려 구름 위 대좌에 앉아 설법하는 모습이다. 마애보살반가상은 앞이 거칠 것 없는 낭떠러지 위 절벽에 있어 천상의 보살이 육계의 중생을 제도하고 있다는 것을 대뜸 알 수 있다. 마애불은 8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보살님은 이미 천년의 세월 동안 이렇듯 인간세상을 향해 한 송이 꽃으로 교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애불은 천년 동안 인간세상을 교화했다
느긋하고 안온한 풍광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칠불암으로 내려선다. 내려섬과 동시에 시야에 꽉 차고드는 부처상. 칠불암 마애석불이다. 이 마애석불은 절벽에 새겨진 3위의 불상과 특이하게도 사각형의 바위 네 면에 각각 새겨진 4위의 불상이 있어 칠불암으로 불린다. 칠불암의 절벽에 새겨진 본존불은 미소가 가득한 양감 있는 얼굴과 당당한 자세, 섬세하면서도 유려한 선은 부처님의 자비로움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3위의 마애불 앞에 있는 4위의 불상, 네 면 바윗돌에 새겨진 부처님의 얼굴은 하나같이 온순하다. 엄격함보다도 오히려 어디서 본 듯한 농투성이 인상과 흡사하여 전혀 거리감이 없다. 본래의 부처, '내 안의 부처' 모습이 본디 저러하리라.
칠불암 옆에는 최근에 중수한 절집이 있어 뉘엿해지는 햇살 아래 낭랑한 염불소리가 울려 퍼진다. 투명한 목탁소리에 맞춰 염불삼매에 빠진 주인공은 놀랍게도 이국에서 온 파란 눈의 비구니 스님. 지금 염송을 하고 있는 저 벽안의 여승은 어디서, 어떻게 이곳 경주 남산으로 왔으며 무엇을 저리 간절히 간구하는 걸까? '내 안의 부처'를 찾는 여정은 저렇듯 가파르고 험난한가?
뒷덜미를 잡는 의심은 대숲을 지나고 아름드리 솔숲을 지나는 동안에도 꼬리를 감추지 않는다. 의심을 곱씹으며 계곡을 내려오는 길에는 벌써 숲의 그림자가 깊어지고 있다. 산의 굴곡이 끝날 즈음, 이미 개 짖는 소리, 소 울음소리는 급히 계곡을 타고 오르고 산비탈 밭의 농부들은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그러나 남산 부처불을 만나고 불국토를 찾는 길, 빠뜨릴 수 없는 곳이 있다. 발걸음을 재게 놀려 찾은 곳은 동쪽 사면 끝자락에 있는 불곡(佛谷) 감실여래좌상. 이곳 사람들은 흔히 '할매 부처'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불상은 높이 3m정도의 코끼리 형상 바위를 아치형으로 감실을 파고 그 안에 여래좌불을 안치했다. 살며시 숙인 듯 고요한 가운데 잠겨있는 불상의 복스런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더없이 편안하다. 바라는 바를 세우고 어리광 부리듯 조르면 소원 하나쯤은 들어줄 듯하다. 이 편안함은 곧 신라인들의 심성이자 내가 그려야할 본바탕이 아닐는지….
불곡 할매 부처를 기억에 새기며 경주를 떠나는 길, '신라인의 미소'가 환하게 배웅하고 있다. 옛 신라인의 따뜻한 심성으로…. 오늘 하루 경주 남산을 대중없이 헤맨 후, 중생이 살 만한 세상, 정(淨)한 땅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음을 짐작하겠다.
글·사진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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