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제가 2009년에 세계적인 경기 침체 상황에서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이면서 2010년 경제에 대한 낙관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세계 경제가 회복 국면으로 접어들어 수출이 늘고, 소비와 투자 심리 개선으로 내수 경기도 살아날 것이 예상되어 내년 한국 경제는 적어도 4% 내외의 성장률은 거뜬히 달성할 전망이다. 정부의 대대적인 공공투자가 성공적으로 추진된다면 내수 회복 속도가 그만큼 빨라져 거의 6%에 가까운 성장까지 가능하다는 전망도 줄을 잇고 있다. 미래 경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경제 주체들의 경기 심리를 자극하여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과도한 낙관론은 실물 경기 회복 내용보다 더 높은 기대 심리가 조성되는 '기대 버블'(expectation bubble)현상을 유발하여 정책 운영에 차질을 초래하고 경기 흐름을 왜곡시킬 우려가 크다.
일단 과도한 낙관론은 대내외 경제 지표들의 개선 추이에 가려져 있는 잠재된 위험 요소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 세계 금융 위기의 재발 가능성이 여전히 상존한다. 세계 경제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 부동산 경기 회복이 더딘 가운데 미국 프라임 주택대출과 상업용 모기지, 신용카드 연체율 등이 급등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불거진 두바이 국영기업인 두바이월드사가 채무상환 유예선언을 한 것은 세계 금융 위기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았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의 재정 악화가 심화되고 있어 올해와 같은 대대적인 정부 지원책을 내년에도 기대하기는 어렵다. 유가를 비롯한 국제 원자재 가격의 빠른 상승도 큰 부담이다. 미국 경기 회복이 부진하고 개도국들의 상대적으로 빠른 경기 호전은 글로벌 달러화 가치 하락과 원자재 수요 증가로 이어져 내년에는 더 높은 국제 유가 상승이 염려된다.
국내적으로도 불안 요인은 곳곳에 널려 있다. 글로벌 달러화 약세 현상으로 원화 가치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것도 문제지만, 가계부채가 다달이 증가하는 것은 더 큰 걱정거리다. 국내 개인가처분소득 대비 가계 금융부채 비중은 이미 미국을 넘어섰다. 전체 가계 부채 중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전체의 40%에 육박한다. 가계부채 증가는 소비 증가를 억제하지만,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 등으로 빠른 금리 인상과 부동산 투기 규제가 강화되면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르는 가계부채발 금융 불안도 유발할 수 있는 골칫거리다. 국내 투자 부진과 노동절약적 산업 구조 전환 등으로 고용 없는 성장 현상이 고착화되는 것도 국내 체감 경기를 쉽사리 개선시키지 못할 것이다.
대내외 불안 요인을 과소평가하고 지나친 낙관론에 사로잡히는 것은 성장률 함정에 빠지게 하고 원활한 정책 운영을 어렵게 할 수 있다. 우선 내년 경제를 내다보는 데 있어서 높은 전망 수치에 너무 큰 의미를 두어서는 안 된다. 올해 경제가 잘해야 제로(0) 성장을 한다고 볼 때 내년에는 기준연도 성장률이 낮아 해당연도 성장률은 높아지는 기저효과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만일 2010년 성장률이 6%가 된다 해도 올해와 내년 두 해의 평균 성장률은 4%대의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3%에 불과하다. 지표상 성장률만을 강조할 경우 두 가지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하나는 기대 버블로 시중 부동 자금 등이 국내 자산 시장에 몰려 자산 거품이 잔뜩 부풀려지고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져 체감 경기가 살아나기 전에 긴축 정책의 필요성이 높아지는 점이다. 또 하나는 정부가 계획하는 경기 활성화 정책의 성공적인 추진이 어려워질 수 있는 점이다. 잠재성장률 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경제 성장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마련한 경기 활성화 정책은 상당 부분 정당성을 잃어버린다. 반면에 출구전략을 조기에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의 당위성은 높아져 정부는 출구전략 추진 시기를 선택하는 데 있어 운신의 폭이 그만큼 좁아지게 된다.
내년에는 기저 효과가 크게 작용하는 성장률 올리기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경제 성장 기반을 형성하는 데 경제 운영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내년보다는 내후년이 더욱 중요하다는 말이다. 내년에 경제 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고 내후년에는 이를 바탕으로 또다시 잠재성장률 이상의 성장을 해야, 국내 경제는 비로소 확대재생산 경제 성장 궤도에 다시 진입할 수 있다. 공공부문보다는 민간소비와 기업투자가 증가할 수 있는 규제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국가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확충할 수 있는 경제 시스템을 선진화하는 데 혼신의 힘을 쏟아야 한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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