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청도 운문산인데요. 등산하다 발목을 삐어 움직일 수가 없어요. 점점 부어올라요."
"안정을 취하시고요. 정확한 위치를 말씀해주세요. 소방 헬기가 곧 도착할 겁니다."
소방본부 상황실로 조난을 알리는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 내용은 119 구조헬기가 있는 소방항공대로 급히 타전된다. "구조출동, 항공대 구조출동, 운문산 정상 골절환자, 구조출동."
3일 오후 대구 동구 K2 공군부대 내 경상북도소방본부 소방항공대에서 모의훈련이 시작됐다. 2대의 헬기를 보유한 항공대는 조난자를 평지에 있는 구급차까지 이송해야 한다. 겨울철에는 산불도 경계해야하지만 산에 오르다 조난을 당하는 사람도 적잖기 때문이다.
스피커를 통해 구조출동 방송이 나가자 조종사 2명과, 정비사 1명, 구조대원 2명이 활주로에 나타난다. 이들은 항공대 어디에 있든 방송을 들을 수 있다. 조종사가 헬기에 오르고 구조대원이 뒤따른다.
조난자를 구하러 가는 길은 차분하다. 비행 15분 만에 조난자가 기다리는 운문산이 보인다. 구조대원 오정희 소방위가 로프를 타고 내려가 조난자의 상태를 살핀다. 무전기를 통해 기장 오근배 소방경에게 조난자의 상태를 보고한다. 들것이 내려오고 조난자를 끌어올리기까지 15분. 그 사이 운문댐 아래 동창천변 둔치에 구급차가 도착해 있다는 소식도 오간다. 둔치까지 가는 데 5분이 채 안 걸린다. 항공대원들은 침착하다. 정비사 강민욱 소방장은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했다.
헬기의 최대 장점은 단연 기동성. 울릉도를 제외한 경북지역을 1시간 이내에 갈 수 있다. 시속 200~300㎞의 속도로 뻥 뚫린 하늘길을 이동한다.
경북도소방본부가 갖고 있는 헬기는 2대. 산불진화와 구조구급 둘 다 가능한 러시아산 '까므푸' 와 2006년 들여온 '도핀' 헬기다. 이날 구조에 투입된 헬기는 '도핀'. 공중에서 지상으로 부는 바람이 적어 산악지형에 유리하다. 하지만 바람이 강하면 위험한 기종이 '도핀'이다.
기장 오근배 소방경은 "15노트(초속 7.5m) 바람이 불고 있어 몸체가 많이 흔들렸다"며 "20노트까지는 '도핀'이 활약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일 때는 '까므푸'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강풍 경보(30노트 이상)에는 헬기가 아예 뜰 수 없다. 오 기장은 "헬기가 무용지물인 경우가 적잖은데 안개가 짙 을 때와 어두울 때가 특히 그렇다"고 했다.
그 때문에 소방관들은 특히나 야간 산행을 경계한다. 또 경사가 심한 곳에서 조난을 당할 경우 헬기의 진입이 곤란하다. 김성중 소방경은 "일반적으로 15m 상공에서 헬기가 멈춰서지만 경사가 심한 곳에서는 지상 50m 상공에서 멈춰 구조에 나서기도 한다"며 "지상과 거리가 떨어질수록 위험하기 때문에 경사가 급한 곳에서는 등산에 더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조난자에게 무리인 것은 알지만 "헬기가 접근할 수 있는 곳으로 조금만 움직여 달라"고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 골절상을 입은 사람을 주변 사람들이 헬기 이송이 가능한 곳으로 이동시키면 구조 시간은 크게 단축된다.
조난자가 자주 생기는 지역도 있다. 소방관들에겐 일종의 '블랙리스트'. 청송 주왕산 주봉 인근과 봉화 청량산 하늘다리 등은 1달에 2, 3번씩 가는 곳이다. 문경 대아산은 가파른 산으로 겨울철에 위험하다. 소방관들은 정상에 올랐다는 기쁨을 술로 표시하다 하산길에 다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119 헬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산불진화 용도보다 구조구급에 이용되는 경우가 늘어났다. 2006년 33건에 불과했던 구조구급 용도는 지난해 83건까지 늘었다. 올해도 지난달까지 63건이 구조구급을 위한 것이었다.
김창한 항공대장은 "119 헬기가 있어 많은 사람이 구조되고 산불진화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며 "하지만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사전예방"이라고 강조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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