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경인년(庚寅年) 호랑이해를 맞았다. 한국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에 호랑이만큼 특별한 동물도 드물다. 단군신화에서부터 현대의 캐릭터 상품에 이르기까지 호랑이 이미지는 다양하다. 예로부터 호랑이는 산군자(山君子) 산령(山靈) 산신령(山神靈) 산중영웅(山中英雄)으로 불리며 숭배의 대상이자 사나움 무서움 등으로 공포의 대상, 힘 권위 용맹함 등으로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호랑이 문화가 많은 이유
민속과 전설 관련 자료들은 우리나라에 유독 호랑이와 관련한 문화적 현상이 많은 까닭을 산악 국가의 특성에서 찾는다. 산이 많은 나라일수록 산을 숭배하는 경향이 많고, 국토의 70%가량이 산인 우리나라 역시 산을 숭배하는 의식이 발달했다는 것이다. 산을 숭배하는 과정에서 산에서 가장 크고 힘센 동물인 호랑이를 민족신앙의 정신으로 승화했다는 말이다. 호랑이는 호신으로 숭배되어 산주(山主) 또는 산신으로 인식됐다. 강원도의 '산돌이', 충청도의 '산지킴이', 경상도의 '산찌검이' 등은 산의 임자, 곧 산을 지키는 자로 호랑이를 숭신함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호랑이 형상은 선사시대 청동기와 암각화(巖刻畵) 등에서부터 나타난다. 신라 토기에도 호랑이가 선각(線刻)으로 등장한다. 석관에 새겨진 사신도(四神圖) 중에 백호(白虎)도 보인다. 사찰의 산신각에서는 신을 보좌하거나 대리하는 호랑이 그림을 흔히 볼 수 있다.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갈남리 '백호(白虎) 서낭당'에서 호랑이를 주신(主神)으로 모시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고대의 호랑이 신화에 인간적인 면모가 투영됐다. 인간이 호랑이가 되기도 하고, 호랑이가 인간이 되어 충고나 훈계를 하는 것이다. 호랑이가 우리 민족의 생활로 민간화되면서 신성성과 더불어 친근한 이미지를 획득하기도 했다.
현대에 와서 호랑이는 무서움보다 '친근함'으로 정착하는 분위기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공식 마스코트는 '호랑이'이었다. 또 1998년 제정된 서울시 마스코트 역시 호랑이다. 울산 현대 호랑이 축구단, 기아 타이거즈 등 현대인들에게 호랑이는 힘과 기상의 상징인 동시에 친근함의 대상이 됐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어린이 드라마 '호랑이 선생님'을 비롯해 국악 뮤지컬 '호랑이를 만난 놀부'(2005), 모노 드라마 '호랑이 아줌마'(2005 부산국제 연극제 초청작) 등을 통해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거듭나고 있다. 2010년 호랑이 해를 맞아 시민들과 역술인들은 '호랑이의 기상으로 희망찬 새해를 열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공포의 상징 호랑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호랑이는 숭배의 대상이자 공포의 대명사였다. 30~40년 전까지만 해도 어른들은 비가 내리는 데도 햇빛이 나면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고 했다. 호랑이가 장가가는 날 비가 내리면 호랑이가 노하여 해를 끼칠까 봐 동물들이 힘을 합쳐 햇빛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만큼 호랑이가 두렵다는 의미일 것이다.
1894년부터 97년 사이 한국을 4차례 답사했던 영국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에는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호랑이를 두려워하는지 잘 나타나 있다.
'처음에 나는, 평화로운 농업유역이 호랑이에 의해 화를 입고 개, 돼지, 소들이 물려가며, 밤에 인가를 방문하거나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문 사람들이 자주 그것의 먹잇감이 되곤 한다는 것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끊임없이 반복되는 호랑이의 이야기들과 마을의 공포, 마포에서 짐꾼들이 어두워지고 난 다음에 여행하기를 거부하던 것, 몇몇 지역에서는 최근에 이르기까지 확실히 그러한 인명 피해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한강 상류에는 최근에 버려진 마을이 하나 있었는데, 호랑이들이 계속해서 주민들을 물어갔기 때문이었다.'
◆은혜 갚은 호랑이
무서운 호랑이가 있다면 은혜를 갚았다는 호랑이도 있다.
한 나무꾼이 새끼 호랑이의 목숨을 구해 주었는데, 나중에 나무꾼의 어머니가 큰 병에 걸렸다. 가난한 나무꾼은 약을 쓸 돈이 없었다. 그때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당신이 예전에 내 새끼를 구해 주었으니 은혜를 갚고 싶다. 내 가죽을 팔아 어머니의 약값으로 써라"라고 했다는 이야기다.
또 호랑이 해에 건강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날 산에서는 새끼 호랑이가 태어났다. 어느 날 아비 호랑이는 제 새끼를 먹이기 위해 사내아이의 아버지를 잡아가버렸다. 마을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힘을 합쳐 수컷 호랑이를 잡아 죽였다.
몇 년 뒤 마을에 도적 떼가 나타나 닥치는 대로 약탈하고 사람들을 잡아갔다. 그때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도적떼와 사람들 앞을 막아섰다. 도적떼는 마을 사람들 중 한 사람을 제물로 바치기로 하고 모두 옷을 벗어 호랑이 앞에 던지라고 했다. 호랑이가 선택한 옷의 주인을 호랑이에게 넘기겠다는 말이었다. 호랑이는 사내아이의 옷을 밟았다. 사내아이가 제물로 남자 그 어머니도 차마 떠날 수 없어 함께 남았다. 도적떼와 마을 사람들이 떠나자 호랑이는 모자를 잡아먹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몇 해 전 내 남편이 당신 남편을 잡아먹고, 마을 사람들이 내 남편을 잡아 죽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불행한 일을 화해하고 평화롭게 살자."
호랑이가 도적들에게 끌려가는 모자를 구해준 것이다. 그 후 아이와 새끼 호랑이는 벗이 되어 함께 성장했다.
◆ 호랑이 해에 거는 기대
2009 기축년은 경제 위기와 더불어 성난 황소 같은 한 해였다. 그러나 새로 맞이하는 호랑이해는 대범한 호랑이처럼 넓고 깊게, 관용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많다. 호랑이는 무서운 존재이기도 했지만 예로부터 진중함, 듬직한 기상을 상징하는 대상이기도 했다.
역술인들은 "호랑이해에는 사랑과 관심으로 서로 보듬어주고 화합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들어서 기분 좋은 말임에는 틀림없다.
시민들도 "새 해에는 지난해 경제 위기와 혼란을 극복하고 국운 상승과 희망의 해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듬직한 호랑이의 기상이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고루 뻗칠 것이라는 기대다.
◆왜 곰띠는 없나
다양한 설화와 전설뿐만 아니라 단군신화에도 호랑이와 곰이 등장한다. 그러나 호랑이띠는 있어도 곰띠는 없다.
십이지가 동물로 상징되고 12가지 동물을 배정시킨 것은 2세기경인 중국의 후한(後漢) 때 왕충(王充)의 논형(論衡)에서부터다. 그 후 오행가(五行家)들이 십간과 십이지에다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의 오행을 붙이고 상생상극(相生相剋)의 방법 등을 배열하여 사람의 운명은 물론 세상의 안위까지 점치는 법을 만들어냈다.
십이지는 시간과 방위를 나타내는 시간신과 방위신으로 나타나면서 불교와 결부된다. 불화(佛畵)에서 보이듯 약사여래 권속으로서 십이지신장으로 표현된다. 점술가들은 각각 시간과 방위에서 오는 사기(邪氣)는 그 시간과 방위를 맡은 십이지의 동물이 막고 물리친다고 믿었으며, 불가(佛家)에서는 그 시간과 방위를 지키는 불보살과 신중이 물리친다고 믿었다.
말하자면 십이지는 우리나라만의 것이 아니라 불교와 중국 문화의 영향이 미치는 지역에서 고루 등장한다. 십이지는 우리나라만의 신화가 아닌 것이다. 곰이 단군신화에 등장함에도 열두 띠에 포함되지 않는 까닭이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