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만 해도 건강한 아이였는데, 하나뿐인 아들이 어쩌다 저렇게 됐는지…."
곽갑연(50·대구 달서구 상인동)씨는 주름이 깊게 파인 얼굴로 한숨을 쏟아냈다. 곽씨의 아들 진태식(25)씨는 다발성 신경섬유종증 환자다. 온몸에 종양이 포도알처럼 주렁주렁 연결돼 퍼지는 병이다. 뇌에도, 시신경에도, 폐에도, 살갗에도 종양은 가리지 않고 생겨났다. 수술은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상태는 계속 악화될 뿐이다.
◆긴 고통의 시작
태식씨는 초등학교 3학년 무렵 병이 찾아왔다. 어느 날 입이 약간 돌아가면서 귀 뒷부분이 아프다고 했다. 곽씨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더니 귀 뒤에 종양이 있다고 해서 곧장 수술을 받았다. 그것이 긴 고통의 시작이었다. 병원에서는 '다발성 신경섬유종증'이라고 알려줬지만 곽씨는 이렇게까지 심할 줄은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한동안 별 탈 없이 잘 지내던 태식씨는 중학교 3학년 무렵 '어깨가 저리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동네 병원에서 며칠간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없어 경북대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MRI 사진을 곽씨에게 보여주며 "종양이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퍼졌다"며 "손쓸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래도 곽씨는 하나뿐인 아들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 길로 아이를 데리고 서울로 갔고, 크고 작은 종양 제거술을 20차례 이상 받았다. 워낙 자주 수술을 받다 보니 병원 생활은 아주 진저리가 난다고 했다.
불행은 겹쳐왔다. 중국집 요리사로 일하던 남편 진판재(52)씨마저 그 무렵 손가락을 다쳤다. 새끼 손가락에 인공뼈를 삽입하는 수술을 해야 했고, 수술 후에 손힘이 없어 요리사 일도 그만둬야 했다. 남편이 일을 그만두니 가뜩이나 쪼들리던 살림은 병원비를 마련하는 것은 커녕 생계마저 막막해졌다.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삶
태식씨는 10여년 투병했지만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다. 2008년엔 갑자기 배가 아파 병원에 실려가 네번의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내장과 척추 쪽에 생긴 종양 때문이었다.
잠시 상태가 호전되면서 3년 전 장애인직업재활학교를 다니는 등 투병 의지를 다지기도 했지만 잦은 수술과 악화되는 병 때문에 희망을 잃어버린 상태다. 잦은 방사선 치료에 귀는 청력을 아예 잃어버렸다. 지금은 눈도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다. 시신경에도 종양이 생겨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지만 수술이 힘든 부위여서 손을 댈 수도 없는 상황이다.
지난 2008년 말, 태식씨는 투신자살을 시도했다. 폐와 각종 내장기관에 생겨난 종양을 제거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태식씨는 계단에서 그대로 뛰어내려 굴렀다. "수술 후 고통을 너무 참기 힘들었다"고 했다. 곽씨는 "그때 조금만 늦게 발견을 했더라도 지금은 살아있지 못했을 것"이라며 "수술 후 꿰맨 곳이 다 터져 다시 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오죽 힘들었으면 그렇게까지 했겠느냐"고 눈물을 쏟아냈다.
이제 태식씨는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꼼짝도 할 수 없는 처지다. 집안에서는 겨우 몇 발짝씩 걸어다니긴 하지만 엄마의 부축 없이는 혼자 씻기도 힘들어 마치 어린애 다루듯 옆에서 거들어 줘야만 한다. 아직 한창 젊은 나이. 컴퓨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시력이 점점 흐려져가면서 그마저도 마음껏 할 수 없다.
그나마 태식씨의 친구가 되어주는 것은 일주일에 한번씩 찾아오는 방문간호사와 호스피스 봉사자뿐이다. 귀가 들리지 않아 대화를 할 수가 없다 보니 노트 가득 볼펜으로 속에 있는 이야기를 적어 대화를 대신하고 있다. 가족과의 대화도 글로 대신한다. 태식씨의 아버지는 "아버지가 능력이 없어 미안하다. 네가 희망을 잃지 않고 엄마에게 용기를 주면 좋겠다"고 적어놓았다.
◆막다른 가정, 한줄기 희망만 있다면
현재 태식씨의 아버지는 택시 운전으로 한달에 30만원가량 번다. 사고로 다친 팔이 자꾸 감각을 잃다보니 저리고 붓는 일이 잦아 오랜 시간 운전을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B형 간염을 가지고 있어 무리를 해서도 안 된다. 곽씨는 "남편이 자꾸 어지럽다고 하는데 아직 병원비가 없어 검사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며 "한푼이라도 벌겠다고 매일같이 운전을 나가긴 하지만 사납금(12만5천원)도 못 채우기 일쑤다"고 했다.
곽씨 역시 환자이기는 마찬가지다. 곽씨는 추간판탈출증으로 척추 수술을 두번 받았다. 여기다 고혈압과 당뇨, 퇴행성관절염 등의 만성질환까지 안고 있어 사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하지만 곽씨는 "아들이 조금이라도 덜 힘들수 있다면 뭐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라며 "병원에서는 감마나이프 치료를 통해 뇌에 있는 종양을 제거해야 한다고 자꾸 독촉을 하지만 수술비가 겁이 나 엄두를 내지 못하고 몇년째 시간만 흘려보낸다"고 가슴을 쳤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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