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향기를 믿다

어스름한 시간에 공원으로 나갔다. 공원은 고속도로와 일직선에 있다. 방음벽이 있어 소음이 어느 정도 차단은 되고 있지만 가속력이 붙은 자동차 바퀴와 노면의 마찰음을 송두리째 흡수하기는 어렵다. 나는 곡선으로 길게 이어진 공원의 샛길을 걸으며 허공을 휘돌아오는 소리들을 내 귓속 달팽이관에 주저앉힌다.

주변이 왁자지껄하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까불대며 지나간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 자전거 소리, 개 짖는 소리, 음악 소리, 여자들의 웃음 소리, 남자의 고함 소리, 아이의 우는 소리도 들린다.

소리는 끝도 없이 이어진다. 공원의 운동기구에 몸을 싣고 있던 꼬맹이는 많고 많은 소리 중에서도 제 엄마의 목소리를 용케도 알아듣고 용수철처럼 튕겨 제 집으로 뛰어간다. 부를 수 있고 부름에 응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그 소소한 행복을 나는 최근에서야 알았다.

46명의 천안함 희생 장병들의 합동 장례식 기간이다. 불러서 밥 먹일 자식을 잃어버린 엄마들은 통곡했다. 목이 터져라 이름을 부르고 손으로 허공을 휘저어보지만 아들은 대답이 없다. 이제 아들들은 소리를 낼 수 없다. 소리를 잃어버렸다.

나는 샛길을 조용히 걷는다. 파워워킹을 한다는 게, 발소리를 낸다는 게 왠지 미안해서다. 장례식이 시작되었는데도 실종자 여섯 명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다. 왜 안 보내주는 거지? 따져보지만 바다는 말이 없다. 속내를 들킬까봐 더 깊게 침묵하고 있다. 바다 또한 푸르디푸른 젊음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 눈가가 짓무르도록 비통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바람에 꽃향기가 실려 온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 보면 주인공 그르누이는 거대한 도시 속에서 모든 향기를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은 하나의 향기를 발견한다. 그는 냄새를 추적해 나갔고 향기의 발원지를 찾았다.

많은 사람들의 희생의 대가로 그는 십만 가지의 향기와 비교해도 월등히 차이가 나는 향수를 만들어낸다. 어쩌면 46명의 전사자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어떤 불순물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향기인지도 모른다.

허망하고 어이없어, 마음을 치유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어떤 것도 아들의, 남편의, 아빠의 빈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십만 가지의 행복을 잃은 듯한 그들에게 무슨 말이 위로가 될까만, 소리는 잃었지만 향기는 영원하다는 말도 위로가 된다면 해주고 싶다. 세상은 소리가 아닌 향기로 순환이 되므로.

임수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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