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 의심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지난 4월 30일 승용차가 대구 와룡시장으로 돌진해 3명이 사망하고 7명이 부상하는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한 데 이어 지난달 6일에는 대구 앞산순환도로에서 급발진 추정 사고가 발생해 17명이 부상을 당했다. 또 지난달 17일 제주도에서는 경찰 순찰차가 급발진 추정 사고를 냈으며 이달 16일에는 삼척시 원당동에서 일어난 급발진 의심 사고로 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급발진 의심 사고는 해마다 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급발진 의심 사고는 2009년 81건에서 지난해 241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되지 않는 사고를 합치면 급발진 의심 사고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급발진 의심 사고가 빈발하고 있는 가운데 블랙박스 보급으로 사고 영상이 공개되면서 급발진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토해양부는 민관합동조사단을 꾸려 급발진 사고 조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민관합동조사단의 조사를 두고 실효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급발진 의심 사고를 둘러싼 쟁점과 이번 조사가 갖는 한계 등을 정리했다.
◆운전자 실수 VS 차량 결함
급발진 의심 사고를 둘러싼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급발진 여부다. 급발진 의심 사고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0년 이후 국내에서도 급발진 의심 사고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지만 자동차 제조회사들의 입장은 한결같다. 급발진 사고는 있을 수 없으며 운전자의 실수라는 것. 하지만 급발진 의심 사고를 당한 사람들은 차량 결함을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급발진 의심 사고를 모두 운전자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무리라며 급발진 사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차량의 전자장치에서 발생하는 전자파의 교란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차량 부품 3만여 개 가운데 전자부품이 차지하는 비율이 30% 정도이기 때문에 자동차도 컴퓨터처럼 전자 장치의 오작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급발진을 일으키는 중요한 원인으로 전자파 교란이 꼽히고 있다. 급발진 의심 사고가 자동변속기(오토)를 장착한 차량에서만 발생하는 것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수동변속기의 경우 사람이 동력을 끊었다 잇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교란이 일어날 여지가 없는 반면 자동변속기는 사람의 의지와 무관하게 동력이 지속적으로 공급되므로 교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민관합동조사단 진실 밝힐까?
민관합동조사단은 대구 와룡시장과 앞산순환도로에서 발생한 급발진 의심 사고 등 6건에 대해 조사를 벌인 뒤 다음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6건 가운데 차량 소유자가 동의한 3건은 조사 과정까지 공개할 계획이다. 또 민관합동조사단은 32건의 급발진 추정 사고에 대해서도 10월 중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로 했다.
민관합동조사단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민관합동조사단이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차량사고기록장치(EDR)도 분석해서 공개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EDR은 충돌 5초 전부터 충돌 시점까지 차량 속도와 브레이크'가속 페달 조작 여부, 엔진 회전수(rpm) 등을 기록하는 장치다. 급발진 의심 사고에서 운전자 과실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 조작 여부다. 이에 따라 EDR은 급발진 의심 사고의 진실을 규명할 수 있는 자동차의 블랙박스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EDR 분석 장비를 갖춘 자동차 제조회사들은 그동안 EDR 공개를 꺼렸다. 사고 당사자의 공개 요청에 불응해도 법적 근거가 없어 강제할 방법이 없었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급발진 의심 사고는 운전자 실수로 결론이 났다.
민관합동조사단은 EDR 분석과 공개를 통해 급발진 의심 사고를 둘러싼 의구심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급발진 의심 사고는 재현이 불가능해 증거 확보가 곤란하고 특정 장치만을 살펴봐서는 정확한 원인 분석도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1980년 이후 세계적으로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했지만 자동차 선진국이라는 미국과 일본에서도 아직까지 명확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이유다. 특히 미국은 2009~2010년 도요타 차량의 급발진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미항공우주국(NASA) 과학자까지 동원해 집중 조사를 벌였지만 차량 결함이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했다. 우리나라 정부도 1999년 급발진 조사를 벌였지만 소득을 얻지 못한 채 마무리한 전력이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조사가 자칫 자동차 제조사에 면죄부만 안겨줄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원인을 찾지 못할 경우 급발진 사고로 재판 중인 사건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급발진은 있을 수 없다는 자동차 제조사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필수 교수는 "정부가 여론에 떠밀려 조사를 시작한 것부터 잘못됐다. 일이 터지자 부랴부랴 꾸려지는 조사단보다는 준 상설위원회를 만들어 결함 여부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EDR 과신은 금물
전문가들은 EDR의 경우 자동차 제조사들이 에어백 작동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만든 장치이기 때문에 에어백이 터졌을 때 가속과 감속 여부만을 판단할 수 있을 뿐 급발진 원인을 규명하는 장치가 아니라고 말한다. 에어백이 터지지 않은 사고나 에어백 미장착 차량의 사고 분석에는 무용지물이며 EDR을 장착하지 않은 차량도 많아 EDR을 통한 급발진 원인 규명은 한계가 있다는 것.
김필수 교수는 "EDR은 고급 차량과 최근에 출시된 차량 일부에만 장착되어 있어 보편성이 없다. 또 EDR은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를 얼마나 세게 밟았는지는 표시해 주지 않는다.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를 살짝만 밟아도 EDR에는 밟았다는 단순 기록만 남는다.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조작 여부를 ON/OFF만으로 표시하는 까닭에 증거 자료로는 부족하다. 특히 상세 기록이 남지 않아 분석 자료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수 있는 맹점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급발진 사고는 가속 페달을 밟고 가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이럴 경우 EDR에는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밟은 것으로 표시되기 때문에 운전자가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급발진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데는 EDR보다 운전자의 발동작을 찍는 블랙박스를 설치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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