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허기 채운 음식→국민 대표 먹거리…라면 50년의 진화

중국 '라멘' 일본 건너갔다 국내 유입…연간 35억 개 생산, 2조원

"라면만 먹고 뛰었어요." 1986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임춘애. '라면 소녀'로 불렸던 임춘애 선수에게 라면은 혹독한 삶의 기억이자, 세상으로 용솟음치게 한 동력이기도 했다.

1963년 삼양식품이 일본 회사로부터 제작 기술을 도입해 삼양라면을 국내에 출시한 지 50년이 흘렀다.

도입 50년 만에 라면은 쌀을 잇는 우리나라 제2의 주식(主食)이 됐다. 굶주림을 면하는 '한 끼 때우기'용 식품이 지금은 웰빙 라면으로 진화하고 라면 뷔페까지 등장하며 한국의 대표 먹을거리로 자리 잡았다.

◆주린 배를 채워준 라면

그동안 라면은 서민의 굶주림을 채워준 식품이지만 일종의 저급음식으로 억울한(?) 대접을 받아왔다. 1963년 삼양식품이 처음 등장시킨 '삼양라면'은 10원. 한국전쟁 이후 식량이 부족해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을 위해 개발한 것이었다. 미군부대에서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를 끓여 만든 '꿀꿀이죽'이 5원, 커피가 35원이었다.

삼양식품 창업주 전중윤 회장은 사람들이 꿀꿀이 죽을 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선 모습을 보며 일본에 갔다가 본 라면을 떠올렸다. 전 회장은 정부를 설득, 5만달러를 지원받아 일본의 명성식품을 통해 라면 제조 기계와 기술을 도입했다.

라면의 어원은 중국 란저우 지역의 전통 국수 요리인 '라멘'이 메이지유신 직후인 1870년대 중국인들이 일본 요코하마로 건너가면서 일본에 퍼졌다가 한국에 들어와 꽃을 피웠다는 설이 유력하다.

◆라면 출시 잇따르며 보급도 확산

처음에 보급된 라면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삼양식품은 전 국민적인 시식 캠페인을 벌였고, 그 결과 출시 3년 만에 240만 봉지를 팔았다. 1969년에는 월평균 1천500만 봉지가 팔리며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삼양의 성공에 후발주자들도 속속 등장했다. 1965년 현재 농심인 '롯데공업'이 '롯데라면'을 출시했고, 동방유량 해표라면, 신한제분 대표라면, 풍국제분 해랑라면 등이 뒤를 이었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삼양라면은 범접할 수 없는 업계 1위였다. 1969년에는 국내 최초로 베트남에 라면을 수출했고 1972년에는 컵라면도 출시했다. 하지만 1975년 롯데가 '농심라면'을 내놓으면서 삼양의 1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광고 카피로 유명세를 탄 농심라면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1978년에는 롯데가 사명을 '농심'으로 바꾸기까지 했다.

1980년대는 라면의 황금기라고 불릴 정도로 라면이 국민적인 인기를 끌었다. 사발면, 너구리, 안성탕면, 짜파게티, 팔도비빔면, 신라면 등 메가히트 브랜드들이 이 시대에 만들어졌다.1985년 농심은 만년 2위를 벗어났고 이후 삼양과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올핸 빨간 국물, 프리미엄 라면이 대세

현재 국내에서 생산되는 라면은 약 35억 개로 국민 1인당 한 해 64개의 라면을 먹는 셈이다. 201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라면 시장은 약 1조9천600억원 규모이고 지난해에는 2조원을 넘어섰다. 시장의 70% 이상을 농심이 차지하고 있고 삼양식품, 오뚜기식품, 한국야쿠르트, 빙그레 등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컵라면과 짜장라면, 비빔면 등장 이후 큰 변화가 없던 라면 시장에서 2011년엔 '하얀 국물' 열풍이 불었다. 꼬꼬면과 나가사키 짬봉 등 국물이 흰 라면이 인기를 끌면서 라면 시장을 2조원대로 끌어올렸다. 특히 인기를 끌었던 꼬꼬면의 경우 닭 국물을 우려내 50년 전 처음 등장한 한국 최초의 라면과 비슷했다.

이제 한국 라면의 맛은 처음 라면을 들여온 일본으로까지 뻗어나가 일본의 유명 라면 제조업체가 수프 제조기법을 배우러 오는 수준에 이르렀다.

올해 라면 시장은 '빨간 국물'과 '프리미엄'이 대세다. 신라면, 안성탕면, 너구리, 삼양라면의 빨간 국물 4강은 여전히 건재하고 제조업체들은 고추비빔면, 진짜진짜, 불닭볶음면, 남자라면, 열라면 등 맵고 강한 맛의 빨간 국물 라면 신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해 11월 기준 라면 시장 매출액 순위 상위 10개는 짜파게티를 제외하고는 모두 빨간 국물 라면이었다.

프리미엄 라면도 새 트렌드다. 지난해 10월 농심의 신라면블랙은 국외 인기에 힘입어 국내에 재등장했고 판매 한 달 만에 600만 개가 팔리면서 성공을 거뒀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저나트륨 라면, 쌀국수, 건면 등의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어 소비자들은 올해도 새롭고 다양한 맛의 라면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봄이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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