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년 작)는 전쟁 영화의 걸작으로 꼽힌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 장면은 당시로선 너무나 사실적이라 머리끝이 쭈뼛 설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유혈이 낭자한, 처참한 장면은 한 편의 지옥도를 연상시켰다. 그런 장면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천재적인 연출력과 함께 참전 군인과 군사 전문가, 역사학자 등의 철저한 고증을 거쳤기에 가능했다. 70년 전의 전투 현장이 그토록 처참했는데, 현대전은 그보다 더한 끔찍한 지옥도를 만들어내지 않겠는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같은 해에 개봉한, 정말 재수 없는 또 다른 전쟁 영화가 있었다. '씬 레드 라인'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밀려 완전히 망한 영화지만, 일부 영화 팬들에게는 오히려 평점을 더 받는 불운한 작품이다. 상업 영화의 귀재인 스티븐 스필버그는 1982년에 'ET'로 SF 영화의 걸작 '블레이드 러너'를 망하게 하더니, 이때에는 '씬 레드 라인'마저 실패작으로 전락시켰다.
'라이언…'은 돈을 쏟아부어 찍은 전투 장면만 사실적이지만, '씬 레드…'는 군인들의 행동과 사고가 참으로 사실적이다. '씬 레드…'에서는 영웅적인 군인도, 명예로운 군인도 없다. 미군이나 일본군 모두 마구 죽고 죽이고,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전투 장면은 '라이언…'에 비해 보잘것없지만, 인간 심리를 정확하게 그려낸 점에서는 훨씬 뛰어나다. 현실적으로 어느 나라든, 어떤 전쟁이든 전쟁터의 병사나 그들을 보낸 가족들은 '씬 레드…'에 나오는 등장인물처럼 행동할 것이 분명하다. 특출 난 애국심이나 영웅적인 액션은 영화에나 나오는 가식적인 행위일 뿐이다.
요즘 우리 주위에서도 전쟁의 공포가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인터넷에는 전쟁이 나면 뭘 챙겨야 할지, 어디로 피란가야 할지를 묻는 질문들이 자주 보인다. 북한의 행동을 보면 이런저런 걱정을 해야 할 상황이지만, 가끔씩 사회적으로 유명한 분들의 '철없는' 주장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북한에 본때를 보여야 한다.' '전쟁을 불사하더라도 북한에 밀려선 안 된다.' 이들은 전쟁이란 말을 너무 쉽게 하고 있다. 농담이라도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말이다. 전쟁을 막는 것이 우선이고 국가의 자존심은 그다음이다. 철학자 에라스무스는 벌써 500여 년 전에 이런 말을 했다. '겪어보지 않은 자에게는 전쟁이란 달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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