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람들일수록 말을 줄여서 하는 경향이 강하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할 때, '생파'(생일 파티), '열폭'(열등감 폭발) 이런 말을 들으면 문맥상으로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지만, 정확한 뜻을 모르기 때문에 같이 쓸 수가 없다. 이런 줄인 말들은 쓰는 사람들끼리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다른 세대나 계층 간에는 의사소통의 장애가 되기 때문에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지양해야 할 말이다.(입시나 입사 면접에서 자기도 모르게 그런 말을 사용하여 크게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다)
말을 줄여 쓰면 의사소통에 장애가 생길 뿐만 아니라 원래의 말이 가지고 있던 매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엄친아'라는 말이다. '엄친아'는 '골방 환상곡'이라는 웹툰에서 독자들의 큰 공감을 얻었던 말 '엄마 친구 아들'의 준말이다.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훈계할 때 늘 "친구 아들은 또 전교 1등 했다더라" "친구 아들은 어쩜 그렇게 예의도 바르고, 집안일도 잘 도와 주는지…" 이런 식으로 비교를 한다. 자기 아들보다 못한 아이들이 많지만 어머니들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항상 최고인 경우하고만 비교를 하고, 아들이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래서 원래의 말 '엄마 친구 아들'은 '엄마가 나와 늘 비교하는 가상의 존재'이고, '엄마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갖춘 완벽한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그 말을 듣는 순간 사람들은 "맞아, 맞아" 하고 유쾌하게 공감하는 말이 됐다.
그런데 '엄마 친구 아들'이 '엄친아'로 줄면서 지칭하는 대상이 가상의 존재가 아니라 실제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배우 송중기처럼 멋있으면서, 연기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한마디로 남들이 부러워할 조건들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을 '엄친아'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엄마 친구 아들'이라는 말은 한 명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부러워하는 아이들의 모든 것을 모아 놓은 것이었지만, '엄친아'는 한 명이 모든 것을 가진 경우가 되었다. 그래서 '엄친아'라는 단어에는 원래의 말이 가졌던 유쾌한 공감은 사라지고, 말로만 듣던 엄마 친구 아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에서 느끼는 열등감이 두드러지게 부각되는 것이다.
직장인들에게는 어머니가 더 이상 다른 집 아들하고 비교해서 잔소리를 하지 않으시니 '엄마 친구 아들'이 크게 의식되지 않는다. 대신 더 무서운 존재가 있다. 연봉은 1억이 넘지만 늘 일찍 퇴근해서(그런 신들의 직장이 있을까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놀아주고, 집안일도 대신하고(피곤한데 그게 될까 의구심이 들지만), 짜증을 내도 다정다감하게 잘 받아 주며(부처가 아닌 이상 될까 의구심이 들지만),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심지어 부부의 날도 기억하여 깜짝 이벤트를 해 주는 존재, 바로 '친구 남편'이다.
민송기<능인고 교사 chamt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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