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00세 시대 은퇴의 재발견] <2부>행복한 은퇴자들 (16)아파트 경비주임 이징 씨

"나이 70 샐러리맨 흔치않잖아, 하하"

은퇴 후 1년 동안 집에서 놀아보니 답답하고 작아지는 생각이 들어 경비를 지원하게 됐다는 이징 씨는 나이 70이 되어서 월급을 받는다는 것은 대단한 즐거움이라고 자랑했다.
은퇴 후 1년 동안 집에서 놀아보니 답답하고 작아지는 생각이 들어 경비를 지원하게 됐다는 이징 씨는 나이 70이 되어서 월급을 받는다는 것은 대단한 즐거움이라고 자랑했다.
이 씨는 경비라는 직업은 성실하고 건강해야 하며 빠른 판단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씨는 경비라는 직업은 성실하고 건강해야 하며 빠른 판단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비번일 때는 옥상에 심어둔 채소를 가꾸는 것이 즐거움 중의 즐거움이라는 이 씨는 하루 온전히 쉴 수 있는 것이 경비라는 직업의 큰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비번일 때는 옥상에 심어둔 채소를 가꾸는 것이 즐거움 중의 즐거움이라는 이 씨는 하루 온전히 쉴 수 있는 것이 경비라는 직업의 큰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아파트 경비주임을 맡고 있는 이징(70'대구 북구 대현동) 씨. 그는 한때 잘나가는 직장인이었다. 남선물산을 시작으로 계열사에서 30년 넘게 근무하고 케이블TV 업무국장과 스포츠센터 이사를 지냈다.

퇴직하고 1년 동안 놀아보니 답답했다. 무엇보다 스케일이 작아지고 쪼잔해지는 자신이 견디기 어려웠다. 2009년 무작정 문을 두드렸다. 아파트 경비였다. 올해로 5년째. 그는 은퇴자에게 이보다 더 좋은 직장이 없다고 했다. 건강도 챙기면서 돈도 벌고 또 적당한 긴장감을 주니 나이 많은 사람들이 하기에 딱 좋은 일이라고 했다.

여름 뙤약볕에 힘들지 않으냐는 물음에 "이 정도 어려움은 각오한 것"이라며 씩 웃는다. 나이 70에 직장이 있다는 것은 무게 잡고 대접받겠다는 생각은 아예 포기해야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랑했다. "이 나이에 월급 받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대구 북구 산격동의 한 아파트 정문 앞에서 차량을 유도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경비를 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는가.

"경비라는 직업을 부끄럽게 여기는 시기는 지나갔다. 오히려 은퇴자에게 경비는 인기직종이다. 경쟁률이 20대 1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많은 사람을 접하는 일이라 적성에도 맞을 것 같아 지원했다. 대접받으려고 일하는 게 아니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즐겁자고 하는 것이다. 출근할 때 나의 과거, 자존심 같은 것은 모두 접고 나온다."

-좋은 점도 많다고 했다.

"2교대로 근무한다. 24시간 일하고 하루를 온전히 쉰다. 절반의 자유로움이다. 직장생활을 40여 년 한 사람이어서 그런지 매이는 것이 싫다. 한 달의 절반은 내 마음대로 쉬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것이 최고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루 종일 움직이기 때문에 따로 운동할 필요 없고, 술도 적게 먹게 된다. 내일 할 일을 생각하면 술잔으로 가는 손이 저절로 오그라든다. 돈 벌면서 운동도 하고 건강도 챙기게 되는 그런 직장이다. 좋지 않은가."

-아직도 험한 일이라고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

"험하다면 험하고 어렵다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주민들이 인사를 해오고 주민들의 어려움을 함께 해결할 때 보람도 느낀다. 은퇴 후 무슨 일을 하는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내가 그 일을 하면서 얼마나 즐거워하고 보람을 느끼는가가 중요할 뿐이다. 갑이면 어떻고 을이면 어떠냐. 그것은 마음에 담을 일이 아니다. 그냥 즐기면서 하는 거다. 1년 놀아보니 쉽지 않았다. 몸과 마음을 담을 곳이 필요했다. 망설이는 사람은 그만큼 절실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하루일과는 어떻게 되나.

"오전 7시까지 출근이다. 하지만 한 시간 일찍 도착한다. 제일 먼저 아파트 입구를 청소하고, 출근 시간이 되면 회의를 하고 오전 일과를 시작한다. 아파트 구석구석 사각지대를 확인하고 인접한 초소를 둘러본다. 오전 10~11시에 아파트를 순찰하고 점심을 먹는다. 오후에도 아파트 입구에서부터 불법주차나 잘못 주차된 차량을 정리하고 오후 4, 5시에 다시 한 번 순찰한다. 밤에도 순찰이 4차례 있다. 0시부터 4시 30분까지 휴식시간이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아파트 안에 있는 등을 끄고 주위를 확인한 후 교대한다."

-비번일 때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

"퇴근하면 바로 집 옥상부터 올라가 심어둔 채소에 물을 준다. 단독주택에 살기 때문에 옥상에 오이, 토마토, 고추, 가지 등 갖가지 채소를 심어두었다. 물을 주고 난 후 아침을 먹는다. 아침 먹고 오전에 좀 쉬다가 오후에 일이 있으면 나가거나 집안일을 챙긴다. 가끔은 아내와 함께 시장도 가고 그것도 없으면 그냥 쉰다."

-친구들이 부러워하겠다.

"가끔은 힘들지 않으냐고 걱정하지만 대부분은 부러워한다. 밥도 한 그릇 사는데 그 재미도 쏠쏠하다. 경비를 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느냐며 물어오기도 한다."

-어떤 것을 준비하면 좋은가.

"가장 중요한 것은 성실함과 건강이다. 책임감은 필수다. 나이 많다고 얼렁뚱땅 넘어가려 해서는 안 된다. 또 건강해야 한다. 하루 종일 서 있거나 무거운 것을 나르고 정리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빠른 판단력이 요구된다. 화재 발생이나 응급처치, 경찰과의 협조 등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관한 상식도 많으면 좋을 것 같다."

-가족들의 반응은?

"이 나이에 월급받는 사람이 몇 사람 되겠느냐. 자녀들은 대단하다고 이야기한다. 아내도 물론 좋아한다. 밥 안 차려줘서 좋고 집에서 잔소리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아버지나 남편의 위치를 지키며 살고 있는 것 같다."(농담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은퇴 후 직장을 가지는 것이 모든 은퇴자의 꿈일 것이다.

"그렇다. 아직도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것은 자신감과 함께 성취감을 준다. 그것이 큰 일이건 작은 일이건, 멋진 일이건 힘든 일이건 그렇다. 폼나는 일만 찾으니 일자리가 없는 거다. 힘들고 대부분 하기 싫어하는 일이라도 해 보겠다고 마음먹으면 일자리는 얼마든지 있다. 작게라도 수입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아침에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기분은 젊은 날 직장에 출근하는 기분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그만큼 뿌듯하다."

-개인적인 취미는 없나?

"그런 거 없다. 우린 뭘 배우고 취미를 가꾸며 살아온 세대가 아니다. 죽으라 일하고 일 끝나면 술 한잔 하며 털어버리는 그런 생활을 해왔다. 하고 싶다면 농사를 지어보고 싶은데 그것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꿈이 있다면.

"직장을 그만두면 포항 기계면에 있는 선산을 돌보고 싶다. 그 외엔 다른 욕심이 없다."

-언제까지 할 생각인가?

"1, 2년은 더하고 싶다. 그런데 인생이 어디 계획대로 살아지던가? 그저 오늘을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우린 참으로 많은 것을 겪은 세대다. 전쟁도 겪었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았다. 한번 들어가면 평생직장이었고 세상이 급변하면서 구조조정 대상이 된 사람들이다. 요즈음 젊은이들을 보면 그래도 우리는 편하게 살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바람직한 노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전부다."

김순재 객원기자 sjkimforce@naver.com

사진: 김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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