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공천은 공직선거법에서 정하고 있는 용어는 아니지만, 지금은 정당이 공직선거에서 선거구별로 소속 당원을 후보자로 추천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민주당은 기초자치선거정당공천제 찬반검토위원회의 권고에 이은 당원투표를 통해 지난 7월 25일 시'군'자치구의 장과 의원선거에서는 정당공천을 없애는 것을 당론으로 확정했다. 2012년 대통령선거 때 문재인 후보가 내건 공약을 2014년 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당내의 숱한 갑론을박 끝에 일반 당원들의 지지로 뒤늦게나마 당론으로 정한 것이다.
작년 박근혜 후보도 이와 같은 내용의 공약을 국민에게 내놓았던지라 새누리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모처럼 민주당의 결정을 반겼다. 이후 새누리당은 자당 대통령 후보 공약의 당론화를 꾀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민주당이 그랬던 것처럼 크게 진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지방자치 관계자들과 시민사회단체 등은 오래전부터 특히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관한 정치·행정이 펼쳐지는 시·군·자치구의 선거에서는 정당의 이념적 대결을 부르기 쉬운 정당공천제를 없애자고 주장해 왔으며 대통령 후보들도 그렇게 하겠노라고 호언장담했는데도 이를 제도화하기는 쉽지 않은 모양이다. 이 어려움은 고전적인 정당정치론의 옹호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정당으로서 차마 내려놓기 어려운 이해관계가 정당공천제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에는 정당, 특히 국회의원이 많은 큰 정당의 후보자에게 이로운 규정들이 있다. 국회 교섭단체들이 그동안 담합해 서로에게 이로운 내용을 공직선거법에 넣어 왔던 것이다. 무소속 후보자 등에게는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떠안기는 이런 반칙적인 특혜들을 솎아내면 정당공천제 폐지를 둘러싼 이해의 대립은 반감될 수 있다고 본다.
공직선거법은 정당의 당원은 반드시 소속 정당의 추천을 받아, 그리고 정당의 당원이 아닌 자는 선거구 안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는 선거권자의 추천을 받아 후보자 등록을 하도록 정하고 있다. 소속 정당의 추천을 받지 못한 나머지 당원들은 그 공직선거에 나설 수 없다. 탈당하여 선거권자의 추천으로 무소속 후보자로 등록하거나 다른 정당에 입당해 그 정당의 추천으로 후보자 등록을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공직선거를 앞두고 소속 정당을 탈당하거나 다른 정당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더러 나타나게 된다.
정당공천의 특혜는 바로 이와 같은 것인데, 소속 정당의 추천을 받지 못한 당원에게도 당원 신분을 용인하는 등 정당 표방을 허용하면서 선거권자의 추천으로 후보자 등록을 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것이 어떨까? 그러면 시정의 입방아에 곧잘 오르내리는 정당공천의 시비를 선거권자들의 투표로 판가름할 수 있어, 철새 정치인들에 의해 조성되는 정치 혐오감을 줄이고 정당의 추천에 공정성 등의 긴장감도 불어넣을 수 있다.
투표용지에도 매우 큰 특혜와 불이익이 상존하고 있다. 성명과 기호가 인쇄되어 있던 투표용지는 지방선거에서는 1991년 시·도의원선거 때부터 기호, 소속 정당명, 성명을 차례로 담았다. 인물 본위의 투표용지가 기호 본위로 바뀐 것이다. 이와 더불어 투표용지에 인쇄하는 후보자들의 순위인 기호의 결정방식에도 큰 변화가 나타났다. 종전에는 후보자 또는 대리인의 추첨에 따랐는데, 이때부터 정당이 추천한 후보자를 우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당이 추천한 후보자 중에서는 국회에 의석이 있는 정당이 추천한 후보자를 더 받들고, 의석이 있는 정당의 추천을 받은 후보자들의 순위는 소속 정당의 국회 의석 순으로 했다.
이와 같은 투표용지는 유신헌법의 확정 후 1972년 12월에 개정된 국회의원선거법에 처음 등장한 것이다. 민주공화당이 추천한 후보자를 기호 1로서 투표용지 맨 앞에 내세우기 위한 투표용지상의 게리맨더링이었다. 이어 1997년 새천년민주당의 제안을 신한국당이 받아들여 1998년 동시지방선거부터는 국회 교섭단체 등이 추천하는 후보자들에게 정당별로 전국적으로 통일된 기호를 부여해 왔다. 이로써 경상도에서는 기호 1, 전라도에서는 기호 2를 찍는 줄 투표를 제도적으로 조장했다고도 볼 수 있다.
정당공천에 따른 이런 반칙적인 특혜들을 공직선거법에서 걷어낼 수는 없을까? 그런 정당공천제라면 쌍수를 들고 받아들이고 싶다.
강재호<부산대 행정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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