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역에서 의대 합격 후 '半修'…2학년은 편입 통해 'In 서울'

대구 상위권 성적 학생들 "의사도 지방대 취급 못받아 서울行 당연하게

올해 지역 A대 의예과에 합격한 이모(19) 군은 수개월째 수능 공부를 다시 하고 있다. A대에는 등록만 했을 뿐 등교한 적이 거의 없다. 지난 수능에서 만족스러운 점수를 받지 못했다는 그의 목표는 연세대 의예과이다. A대와 이 대학 의예과는 수능 5, 6개 문항 차이다. 이 군은 "수도권 의대를 나오면 대학병원에 근무할 기회를 얻거나, 나중에 개원에 대비해서도 유리하다고 생각해 재수를 결정했다"며 "주위에서 모두 '인(In) 서울' 하니까 대구의 상위권 성적 학생들은 수도권행(行)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지역 대학 위상 하락-인재 유출의 악순환

지역 인재 유출은 지역 대학의 위상 하락과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한때 한강 이남 최고대학으로 불렸던 경북대가 대표적인 사례다. 대구 송원학원이 1990학년도부터 2013학년도까지의 대학별 지원 가능점수를 분석(대입 배치표)한 결과 경북대 위상은 최근 10년 새 '하락의 궤적'을 긋고 있다.

이에 따르면 경북대 국어국문과 경우 중앙대 국어국문과(1995학년도)→건국대'동국대 국어국문과(2000학년도)→ 서울시립대 국어국문과(2005학년도)→숭실대'인하대 국어국문과(2010학년도)→인하대 국어국문과(2013학년도) 와 같은 지원 가능점수대로 분류돼 왔다. 1990년대 경북대와 성적대가 겹쳤던 중앙대, 경희대, 건국대, 서울시립대 등 수도권 대학의 학과들 상당수가 경북대를 따라잡거나 추월하고 있는 것. 입시업체들은 매년 최근 3개년 입시 결과와 당해 수험생들의 지원 성향을 반영해 대입 배치표를 작성한다.

한 입시 관계자는 "대구경북의 경기침체 때문에 거점 국립대학인 경북대가 저평가받는 면이 분명히 있다"면서도 "하지만 경북대에 와야 할 수준의 지역 인재들이 수도권으로 몰려가고 있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라고 했다. 경산의 한 사립대 교수는 "경북대가 무너지면 지역의 나머지 사립대는 도미노식 인재 유출을 겪어야 한다"고 걱정했다.

젊은 인재 유출은 일자리를 찾아 지역을 떠나는 데서도 빚어진다. 작년 대구경북연구원의 '대구경북지역 청년 역외유출 원인과 해소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대구경북 소재 4년제 대졸자의 수도권 취업률은 2004년 17.8%에서 2009년 21.5%로 증가했다. 또 2011년 기준 대구지역 4년제 대학 졸업자의 52%만 대구지역 내에서 취업한 것으로 분석됐다.

지역 청년층(15~29세)의 외부 유출 이유 중 1위는 '마음에 드는 일자리가 없어서'였다. 이 연구를 발표한 김용현 박사는 "지방대학이 무너지면 결국 지역경제가 붕괴한다"며 "지역 대학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획기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역대학에서 2학년을 마치고 편입시험을 치러 수도권의 약학'간호 등 인기 학과로 옮기는 현상도 잘 드러나지 않는 지역 인재 유출의 또 다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지방대학 육성 방안, 기대와 우려

새 정부는 이달 1일 '지방대학 육성 방안'을 발표했다. ▷지방대의 '지역인재 전형' 도입 근거 마련 ▷공무원 지역인재 채용목표제를 현행 5급에서 7급으로 확대 ▷공공기관 지역인재 채용할당제 법제화 ▷지방대 특성화 분야 집중 지원 등의 내용을 담았다.

여기에는 우수 인재의 수도권 대학 집중과 지역 인재의 지역 이탈 현상이 지방대학과 지역의 발전에 악영향을 초래, 국가 균형발전을 저해한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이 같은 지방대학 육성 방안을 두고 지방에선 기대 속 우려, 수도권에서는 위헌'역차별이라는 주장이 벌써부터 맞서고 있다.

청구고 박영식 교사는 "지역인재 전형을 도입해도 대구경북 학생들이 지역 인기대학'학과에 들어가는 경우는 소수에 그칠 것"이라고 했다. 7급 채용 할당제도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 혜화여고 박재완 교사는 "대구 고3 학생들의 수도권 대학 선호 현상이 뿌리 깊어 분위기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지방대 육성정책이 아니라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지방 살리기 정책을 펴지 않으면 수도권으로 인재가 몰리는 현상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영남대 이재훈 교수는 지방대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근본적인 정책 마련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수도권에선 이번 지방대학 육성 방안에 대해 평등권, 공무담임권 침해라고 반대하지만 지금처럼 수도권과 지역 간의 현저한 격차가 존재한다면 정부가 나서서 이를 시정할 수 있다"며 "다만 현재와 같은 지역인재 전형이나 공공기관 채용할당제 등의 지엽적인 정책으로는 지방대와 지역 상생 발전을 실현하는 데에는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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