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좋은생각 행복편지] 행복 교육을 위한 농담 한마디

'햇빛에 지친 해바라기가 가는 목을 담장에 기대고 잠시 쉴 즈음. 깨어보니 스물네 살이었다. 신(神)은, 꼭꼭 머리카락까지 졸이며 숨어 있어도 끝내 찾아주려 노력하지 않는 거만한 술래여서 늘 재미가 덜했고 타인은 고스란히 이유 없는 눈물 같은 것이었으므로./ 스물네 해째 가을은 더듬거리는 말소리로 찾아왔다. 꿈 밖에서는 날마다 누군가 서성이는 것 같아 달려나가 문 열어보면 아무 일 아닌 듯 코스모스가 어깨에 묻은 이슬 발을 툭툭 털어내며 인사했다. 코스모스 그 가는 허리를 안고 들어와 아이를 낳고 싶었다. 석류 속처럼 붉은 잇몸을 가진 아이./ 끝내 아무 일도 없었던 스물네 살엔 좀 더 행복해져도 괜찮았으련만, 굵은 입술을 가진 산두목 같은 사내와 좀 더 오래 거짓을 겨루었어도 즐거웠으련만. 이리 많이 남은 행복과 거짓에 이젠 눈발 같은 이를 가진 아이나 웃어줄는지. 아무 일 아닌 듯해도.'(후략)

김경미 시인의 시 '비망록'입니다. 행간마다, 가을 속으로 빠져드는 스물네 살 여성의 애잔한 마음이 찰랑거리네요. 스물네 살이면 대학을 갓 졸업했을 나이지요. 숙제와 시험으로 숨 막히던 학교생활의 터널을 빠져나와 각개전투로 각박한 사회 현실의 절벽 위로 기어올라야 할 때이지요. 취업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신을 두고 거만한 술래라고 중얼거리는 걸 보면 아무 데서도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지 않았군요. 게다가 남자 친구와 헤어지기까지 했네요. 굵은 입술을 가진 산두목 같은 사내와의 이별 뒤에 너무도 많이 남은 거짓의 시간들. 깊어가는 가을은 그녀의 마음의 툇마루에다 막막함과 외로움을 쌓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이렇게 1년을 보내고 2년을 넘기다 보면 계란 한 판의 나이가 되기는 금방이지요. 용케 취업을 했더라도 출퇴근 시간에 정신없이 쫓기다 보면 계란 한 판에다 3년, 4년 더하기는 또 금방이지요. 이쯤 되면 더듬거리는 말소리로 찾아오던 가을도 입 꼭 다물고 지나가거나 아예 발길을 끊어버리지요.

내일부터 추석 연휴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혼기를 놓친 직장 여성들에게 이 연휴는, 즐거운 만남과 달콤한 휴식이 있는 휴가가 아니라, 가끔은 잊고도 있었던 자신의 죄목, 말하자면 결혼을 못한 연유에 대해 주민증 까고 추궁당하는 청문회 기간이 된다지요.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 일가친척 어르신들은 늙은(?) 처녀들이 눈에 띌 때마다 꼭꼭 되새기기 싫은 나이를 묻고 빨리 시집가야겠다는 걱정을 덧붙여 책임과 의무를 다하려고 한답니다. 그래서 툭툭 던지는 그 말씀들의 펀치에 피멍 들기 싫어 아예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지요. 나 홀로 궁전인 원룸에서 밀린 잠이나 실컷 자거나, 연휴에다 징검다리 휴일까지 엮어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해외로 달아난다지요.

우리 대구 지역에서 혼기를 놓친 여성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을 꼽으라면 아마도 학교가 아닐까 합니다. 교원의 숫자만 보면, 우선 학교는 여인천하입니다. 여자 교원의 비율이 초등학교는 80%를, 중학교는 70%를 상회하니까요. 그리고 대구 지역에는 이 여인천하의 미혼 여성들과 눈높이가 맞을 만한 신랑감이 원천적으로 부족하다는 게 중론입니다. 큰 기업이나 회사가 없다는 것이지요. 가끔 이런저런 인연으로 주례를 부탁해오는 여선생님들이 있는데, 그 결혼 상대자를 보면 열에 여덟아홉은 인근 도시인 구미의 S사, L사의 배지를 단 청년들입니다. 울산, 포항 등지의 큰 회사에 다니는 청년들이 가끔 섞이고요. 눈이 빠지도록 쳐다봐도 대구의 하늘에서는 별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말씀이지요.

요즘 대구교육이 지향하는 바가 행복 교육이라지요. 살벌한 경쟁보다는 모든 학생들의 학습복지를 존중하겠다는 시책들이 참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올해 전국시도교육청 평가에서 1위를 했다지요. 정말 대단한 성과입니다. 그런데 이 행복 교육이 지속적으로 잘 실현되자면 교육의 주체인 교사가 진정으로 행복해야 합니다. 행복하지 못한 교사가 아이들에게 행복을 넉넉하게 가르칠 수는 없을 테니까요.

물론 결혼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며 개인 취향에 따라 삶의 양식도 제멋대로인 요즘, 결혼이 행복한 삶의 필수조건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역사회의 구조적 여건으로 인해 제때 배우자를 만나지 못한 여선생님들을 나 몰라라 방치하는 일은 결코 인정 있는 처사가 아니지요.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혼인할 나이가 지났으나 시집가고 장가가지 못한 자는 마땅히 관청에서 성혼을 시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추석 연휴가 끝나면 또 지친 해바라기처럼 고개를 꺾고 직장으로 돌아올 그녀들을 위무하고, 그간 교실에서 아이들만 쳐다보다 혼기를 놓쳐버린 그녀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그리고 행복교육을 위해, 교육청에서는 이 가을에 그들의 결혼을 주선하는 페스티벌이라도 근사하게 열어야 하지 않을까요?

김동국/시인 poetkim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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