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위해 썼다는 시가 예쁘장하고 귀여운 것이 되지 못해서 한마디 해야겠습니다. 나는 비단 같은 말로 아이들을 눈가림하여 속이는 것이 싫습니다. 동시가 사탕과자나 장난감이 아니고, 더욱 커다란 감동스런 세계를 창조하는 시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나로서는 오늘날 이 땅 아이들의 참모습을 정직하고 진실하게 노래하면서 그들의 영혼을 살리고 싶었습니다.(이오덕의 '철이에게'의 머리말 중에서)
선생님, 선생님이 가신 지 벌써 10년이 흘렀습니다. 우연히 EBS 지식채널을 보다가 울컥해서 혼이 났습니다. '네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너의 말로 쓰렴'이라는 선생님의 마음이 어리석은 제 마음 한쪽을 강하게 때렸습니다. 낙서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내 낙서가 타인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하는 걱정 때문에 스스로를 검열하고 내 마음을 모두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런 내가 어찌 아이들이 살고 있는 학교를 대상으로 글쓰기 정책을 펼칠 수 있을까 하는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늘 아이들에게 몇 가지를 당부하셨습니다. "첫째, 자신이 평소에 하던 말 그대로 써도 괜찮아요. 더러 서투른 말이 나와도 상관없어요. 둘째, 착한 어린이가 된 것처럼 쓰지 마세요. 칭찬을 받기 위해서 잘 보이기 위해서 꾸미지 마세요. 셋째, 슬프고 괴로운 일, 부끄러운 일도 괜찮아요. 얼마든지 좋은 글이 될 수 있어요. 넷째, 잘 쓴 글이라고 해도 그것을 흉내 내지 마세요. 다만 그 글의 정직함만 배우세요. 만들어내는 '글짓기'는 하지 마세요. 있는 그대로 '글쓰기'를 하세요.(EBS 지식채널의 '글짓기 하지 마세요'에서 인용)" 선생님도 알고 계시지요? 아이들의 삶과 생각은 그 자체로 우주라는 것을요. 그것을 꾸미지 않고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진정한 글쓰기이겠지요.
요즘 매스컴에는 자기소개서와 관련한 보도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대입 자기소개서 대필이나 첨삭 비용이 엄청나다는 데서 출발하여 자기소개서는 이렇게 써라, 이렇게 자기소개서를 쓰면 무조건 대학에 떨어진다는 무서운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쩌다 글쓰기가 장사의 수단이 되어 버렸는지 답답했습니다. 선생님께서 하늘에서 지켜보시면서 얼마나 한숨을 쉬고 계실까 하는 생각에 너무나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영어나 수학 과외, 논술 대비 과외 등도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자기소개서를 대필한다는 건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자기를 소개하는 글쓰기를 남이 대신한다는 건 그 학생의 미래를 생각할 때 정말 암담하기 그지없습니다. 자신의 삶이 걸어온 길을 남이 꾸민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 뜰에는 배롱나무꽃이 마지막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습니다. 충주의 이오덕학교나 청송의 화목초등학교 교정에도 배롱나무꽃이 활짝 피었겠지요. 아이들이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말하고 생각하고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책 읽고 글 쓰는' 것보다 더 행복한 교육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도 어떤 목적이나 수단이 아니라 그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되는 그런 날을 꿈꿉니다. 바람이 불면 바람에게 길을 묻고,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길을 걷고, 눈이 오면 눈송이를 바라보며 길을 돌아보는 그런 시간을 기다립니다.
오래 전부터 대구는 글짓기를 하지 않습니다. 글쓰기를 했습니다. 요즘은 아이들이 책쓰기를 합니다. 대단하지요? 책을 쓰면 아이들이 훌쩍 자랍니다. 아이들의 책은 대부분 꾸민 글이 아니라 쓴 글입니다. 대구 아이들이 쓴 글 한 편 읽어 보실래요?
오늘 고3 수능 친다/늦게 온다고 좋아했는데/쉬는 시간 5분 짧아지네//쉬는 시간 내 놔! (강북초교 2학년 장지원의 '쉬는 시간 내 놔'-대구 책쓰기 프로젝트 출판 책 '쉬는 시간 내 놔' 중에서)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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