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주실 마을'은 영양군 일월면에 있는 한양 조씨 집성촌으로 조선 중기 때 조정의 당파싸움과 환란을 피해 내려와 정착하게 된 마을이다.
주실에는 청록파 시인인 조지훈을 기념하는 지훈 문학관과 지훈 시 공원, 옥천종택, 월록서당 등 많은 문화자원들이 있고 실학자들과의 교류와 개화로 일찍 신학문을 받아들인 진취적인 기풍과 문화를 간직한 마을이다.
3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고향마을 신작로변 양지바른 산 중턱에 모셔두고 명절에 가끔 성묘하러 다녀오면서 그동안 잊고 지내왔던 고향마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고 마을의 문화적 가치를 깨닫게 되면서 관심과 애정이 더욱 커져가는 것을 느낀다.
주실 마을에 있는 친정집은 지금 수년간 빈집으로 방치되어 있다시피 하다. 문화마을로 조성되면서 마을 전체가 한옥 보수와 개량 작업이 이루어져 왔지만 친정집은 슬레이트 지붕을 하고 있어 마을 분위기와 조화롭게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거기에다 사람까지 살고 있지 않으니 마을에 폐가 되는 것 같아 갈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우리 다섯 형제들은 이곳에다 많은 돈을 들여 새로 집을 지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기와집으로 잘 지어 마을에 전통의 기운을 느낄 수 있도록 일조해야겠다는 마음이 들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주실 마을은 자녀들 대부분이 서울이나 대구 등 타지로 나가 있고 마을을 지키던 어르신들이 하나 둘 돌아가시면서 빈집이 늘어나고 있다. 주실 마을의 이름이 나면서 한양 조씨가 아닌 사람들과 타지 사람들이 집을 사고 싶어 하지만 집성촌이라는 특수성과 고향 마을에 대한 자부심으로 쉽게 집을 내놓으려는 사람이 없다. 우리 형제들 중에도 선뜻 가서 살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는 것을 보면, 다른 집들도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주실 마을에는 조지훈 시인 외에도 시와 문학을 가까이하는 사람들이 숱하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많은 시를 남겨두고 가셨는데 그래서 생각한 것이 한옥을 참하게 지어 아버지의 이름을 딴 '동주다실'이라는 시와 차가 있는 공간을 만들어 마을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문학의 정취와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마을이 가진 유산과 문화적 가치를 잘 활용하여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긴다면 멀리 있는 자손들을 마을로 돌아오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주실뿐만 아니라 많은 시골에는 빈집들이 늘어나고 있고 없어지는 마을들도 생겨나고 있다. 얼마 가지 않아 고향은 마음속의 고향으로만 존재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베이비부머 세대가 본격적으로 은퇴할 시점인 지금, 이들이 떠나온 고향마을로 다시 돌아가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는지, 이들을 통해 고향마을을 살릴 수 있는 좋은 방법들은 없는지 생각을 모아야 할 때이다.
조미옥 리서치코리아 대표 mee50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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