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5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심판 청구안과 소속 국회의원 의원직 상실 결정안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함에 따라 헌정 역사상 처음으로 정당 해산 결정이 이뤄질지가 정치권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가 정당에 대한 해산심판을 청구하는 것 자체가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인데다 관련 판례가 없어 통진당 소속 의원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헌법학자들도 법 적용과 관련해 연일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상황이다.
◆헌재의 심판 과정은?
정부로부터 5일 통진당에 대한 정당해산 심판과 의원직 상실선고를 청구받은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6명 이상의 찬성으로 해산 결정을 내리게 된다. 헌재는 심판 사건을 접수한 날로부터 180일 이내에 선고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강제규정이 아니어서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해산심판 심리는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공개 구두변론으로 이뤄진다. 법무부와 통진당 관계자들이 헌재 변론에 출석해 정당의 목적과 활동의 위헌 여부를 놓고 치열하게 다툴 것으로 예상된다.
만일 헌재가 통진당의 해산을 결정하면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 통지해야 한다. 결정서는 통진당과 국회, 정부, 중앙선관위에 보내진다. 이때 선관위는 바로 통진당의 등록을 말소하고 그 내용을 공고해야 한다. 이는 행정조치에 해당하고, 해산의 실질적 효력은 헌재가 결정을 선고하는 순간부터 나타난다.
정당법에 따라 헌재가 해산을 결정하는 순간부터 통진당 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 기존의 강령'기본정책과 유사한 내용으로 대체 정당도 만들 수 없다. 잔여 재산은 모두 국고로 귀속된다. 지난해 기준으로 통진당의 재산총액은 중앙당 4억400만원, 시'도당이 7억700만원이었다.
◆의원직 상실? 유지?
헌재가 위헌정당으로 판결해 통진당을 해산할 경우 소속 의원들의 자격 상실 여부는 어떻게 될까. 하지만 이와 관련해서는 어느 법률에도 명시적 규정이 없다는 게 헌법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래서 헌재가 이 부분을 판단할 수 있을지에 대해 논란이 예상된다.
세계적으로는 독일이 연방선거법 제46조 4항에 위헌정당 판결에 따른 정당해산 시 소속 의원의 의원직을 박탈하도록 명문화된 규정을 두고 있다. 실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과거 사회주의제국당(SRP) 위헌 정당 판결 시 "정당의 위헌성이 확인되면 해당 정당 소속 의원의 연방의회'주의회 의원직은 상실된다"고 판결한 사례가 있다.
우리나라 헌법학자들 사이에서는 위헌정당으로 결정됐을 경우 이들 의원의 자격에 대해 '자격상실설' '자격유지설' '절충설' 등 3가지로 의견이 갈리고 있다.
'자격상실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지역구 의원의 의원직 상실은 당연하고, 특히 일반적인 정당 해산과 달리 위헌정당 해산 시에는 '정당이 해산되더라도 비례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다'고 규정한 공직선거법 192조 4항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정당 해산 시 국회의원직을 유지하는 것은 정당 해산 심판의 취지에 맞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반면 '자격유지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현행 헌법이 정당 해산 시 국회의원의 자격상실을 규정하지 않았고, 선거법에 자진해산과 위헌정당으로 인한 해산의 구별이 없기 때문에 위헌정당 해산 시에도 비례대표는 물론 지역구 국회의원도 당연히 의원직을 유지한다고 맞서고 있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자이므로 정당이 해산됐더라도 국회의원 신분을 박탈할 수 없다는 논리다.
'절충설'은 비례대표 국회의원은 정당 대표성이 강하기 때문에 자격을 상실하지만, 지역구 국회의원은 지역 대표성이 강하므로 의원직을 유지해야 한다는 견해다.
이에 대해 선관위 관계자는 "위헌 정당으로 해산될 경우 소속 의원의 자격 상실 여부에 대해 법에 명시적으로 규정된 바는 없다"며 "헌재가 판결 주문에 자격상실 여부에 대해 명시할 경우 그 결정에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유사사례는?
우리나라에서 평시의 정당 해산 사례는 이승만정부 때인 1959년 2월 '조봉암 사건'으로 인해 '진보당'이 해산된 것이 유일하다. 하지만 이는 사법적 판단과 별개로 정부가 직권으로 등록을 취소하면서 이뤄진 것이어서 이번 사례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특히 당시 대법원이 진보당 당수 조봉암에 대한 재판에서 "진보당의 정강 정책이 위헌이 아니다"라고 판결했지만, 이승만정부가 이를 무시하고 정당 해산을 강행한 것이어서 이번 사례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 법조계'학계의 다수 견해다.
이외에도 1961년 5'16 군사정변 직후 모든 정당이 해산된 사례와 1972년 10월 유신헌법 선포 직전에 박정희 정권이 국회를 해산하고 정당활동을 금지한 사례, 1980년 12'12사태로 집권한 신군부가 모든 정당을 해산한 사례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런 정당 해산들 모두 정변 상황에서 초법적으로 강제된 것이라 참고로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의 견해다.
이 때문에 다수의 헌법학자들은 "아직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재판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정당해산을 청구한 정부의 결정이 성급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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