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몇 차례/ 땅바닥에다 동댕이친다./ 붕어 낚시에 걸린 장어 모양/ 담배 꽁초를 구둣발로 짓이기고/ 테 하고 돌아선다/ 하지만 손은 어느새/ 얽힌 줄을 다시 고르고 있다/ 하늘 한 번 쳐다보고 / 또 시작한다'(김광림, 「직업」 전문)
1970년대 시인 김광림은 당시 직장인들의 애환을 이렇게 읊었다. 2002년 신경림 시인은 '요즈음이야 "붕어 낚시에 걸린 장어 모양" 어쩔 수 없이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60, 70년대의 샐러리맨 생활을 거친 사람에게는 아주 실감 나는 시다'라고 평했다.
2002년 즈음에는 그랬던가? 붕어 낚시에 걸린 장어 모양 어쩔 수 없이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이 없었던가? 다들 자기 적성에 따라 평생 몸을 바칠 각오로, 자기 계발과 사회의 공익을 위해 신명 나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을 고르고 들어가고 매일 저녁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 직장 동료와 화기애애하게 맥주 한잔 가볍게 하고 가족이 기다리는 따뜻한 가정으로 룰루랄라 콧노래 부르며 갔었던가? 그랬다면 참 행복한 시절이었을 게다.
그런데, 잊고 있었던 그 시절이, 신경림 시인의 말 한마디가 다시 떠올랐던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3학년, 4학년이 되면 어느 순간 전공 강의실에는 모습 보기가 어려워지고 그러다 간소한 사은회 자리에 나타나 그동안 부전공이니 복수 전공이니 학점 따느라 전공 수업 통 못 들었노라고, 학원에 다니고 그 학원비 충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하고 그러느라 따로 교수님 찾아뵐 시간도 없었노라고, 그래서 어찌 취직은 했느냐는 말에 여전히 열심히 준비 중이라고 고개를 숙이며 부끄럽다는 듯 말하는 우리 학과 학생들의 모습을 새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게 매일 주머니에 사표 넣고 다니며 그래도 하루하루 다시 출근하는 직장인의 푸념이 차라리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신산해진다.
입시 지옥이라더니 이젠 입사(入社) 지옥이란다. 하나가 없어지고 하나가 생긴 것이 아니라 도둑 피하면 강도 만나는 격이 된 것이다. 적성이고 뭐고 가릴 거 없이 그저 합격 가능성이 있다 싶은 곳이면 다 내보지만 그것도 몇 십 대, 몇 백 대 일의 경쟁을 뚫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좁은 취업문, 높은 경쟁률을 뚫기 이전에 취업 준비생들이 치러야 할 준비 과정이다. 서류 전형 통과 자체도 어렵거니와 서류상 필요한 자격을 채우기 위해 대학 4년 내내 다양한 스펙을 갖추어야 한다. 겨우 그렇게 서류 전형에 필요한 요건을 갖추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함께 제출해야 할 자기 소개서를 만들기 위해 돈을 들여 첨삭 지도를 받는다. 그렇게 해서 겨우 서류 전형에 통과해도 이후에 이어지는 인성 검사, 적성 검사와 면접까지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줄줄이 사탕이다. 다시 또 면접을 위해 족집게 과외까지 받아야 한다. 1년 취업 준비하는 데 천만 원 이상이 든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일 년으로 끝나는 경우도 드물다.
그렇게 4년 내내 소위 스펙을 쌓기 위해 노력하고 돈을 들여 준비했건만 대다수는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그런데 문제는 왜 탈락했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객관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회사마다 제대로 된 인재를 뽑는다는 명분만 내세울 뿐, 그 기준은 애매모호하고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시행하는 인성, 적성 검사는 다 제각기이고 면접 또한 다양하기 짝이 없다.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할지 오리무중이다.
올해만 해도 파악된 취업 준비생들만 약 58만 명이라고 한다. 입시 지옥보다 더한 지옥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난감하기 짝이 없다. 개인 면담할 때 학생들에게 무엇을 공부하라고 해야 할지, 아니, 그건 차라리 접어두고라도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에게 어떤 조언을 해야 할지 순간순간 무력감이 든다. 대학만 들어가면 끝이라는 환상이 깨어지는 것이야 인생살이의 한 과정이니 당연한 것일 터이지만 취업을 위해 알 수 없는 적과 지난한 전쟁을 치러야 하는 현실을 그저 당연한 과정이라고 말해줄 수는 없지 않은가. 하면 된다라는 공식이 적용되는 취업 시험 혹은 절차는 과연 있을 수 없는 것인가. 그들이 직장 생활 고달파서 매일 때려치우고 싶다고 찾아와 투정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호규/동의대 교수·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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