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맛 향토음식의 산업화] 캐나다 밴쿠버 연어스테이크

100년 인디언 전통을 현대적 레시피로 개발

캐나다 밴쿠버의 특산품인 연어는 밴쿠버 사람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매년 9월이면 축제를 열고 캐필라노 강을 거슬러 오르는 붉은 속아이(Sockeye) 연어떼와 함께 산책을 즐긴다. 시민들은 연어 보호를 위한 기부금도 기꺼이 내고 있다. 오랫동안 자신들의 먹거리와 밴쿠버의 경제수단이 되어 준 연어에 대한 애정 표현이다. 연어 가공업으로 대표되는 밴쿠버 향토특산물의 산업화는 1900년대 초부터 시작돼 100년의 역사를 이어 왔다. 원주민 인디언들의 전통문화를 이어받은 밴쿠버 시민들의 자연보호를 위한 일상적인 노력에 대해 자연은 더욱 많은 연어로 캐필라노 강을 채워 주는 것으로 응답한다. 밴쿠버 사람들을 만나보면 지난 100년간의 자연과 인간 간의 깊은 신뢰를 느낄 수 있다.

◆팔 만큼 잡는 어부, 먹을 만큼 잡은 원주민

올해 65세인 릭 번즈(Rick Burns) 씨는 경력 48년의 연어잡이 어부이다. 그가 애지중지하는 퍼시픽 프로바이더(Pacific Provider)는 1965년 제작된 연어잡이 전용 목선이다. 선수와 선미가 둥그스름하고 밤색의 호주산 유칼립투스 나무로 만든 뱃전은 반질반질 광택이 난다. 번즈 씨는 "나무배는 쇠배에 비해 울림이 적어 엔진 소음이 덜하다"고 자랑했다.

"연어는 낚시로 잡아야 상품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물로 잡은 것은 하나하나 손질하기가 힘들어 레스토랑 고급 식재료로는 맞지 않아요." 번즈 씨가 잡은 연어는 캐나다 국회의사당의 귀빈 레스토랑과 영국대사관, 캐나다 국가대표선수 훈련장, 밴쿠버 시내 유명 레스토랑 등에 고가로 납품된다. 밴쿠버 앞바다와 알래스카 연안에서 낚시로만 잡은 바다연어이기 때문이다. "연어를 잡으면 즉시 배를 가르고 피를 빼야 합니다. 살 속에 피가 남아있으면 품질이 떨어지니까요." 피를 뺀 연어는 영하 30℃의 선상 냉동고에서 급속 동결한 다음 바닷물을 덮어 얼음 피복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냉동상태에서 탈수현상이 방지돼 갓 잡은 듯한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는 매년 6월 중순 출항해 8일간 항해를 거쳐 알래스카 연안에 도달하면 100여 일 동안 연어잡이를 한다. 잡은 연어는 리치먼드에 있는 저장창고에 넣어 놨다가 연중 필요량을 출고해 쓴다. 그는 작년에 연어 8천여 마리를 잡아 2억원을 벌었다. 1주일 만에 만선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안 잡힐 경우엔 한달 내내 잡아도 냉동고를 다 채우지 못할 때도 있다.

번즈 씨가 잡는 연어는 5종류다. 가장 크고 기름기가 많아 고급요리 재료로 쓰는 스프링(Spring) 연어는 가격이 비싸지만 정부가 마릿수를 제한해 한 해 450마리만 잡을 수 있다. 두 번째는 빨간 색깔의 속아이 연어인데 낚시를 잘 안 물어서 애를 태운단다. 그리고 오렌지 빛깔의 살이 탱탱하고 맛있는 코호(COHO) 연어도 많이 잡고, 가장 작은 핑크(Pink) 연어와 첨(Chum) 연어는 맛이 덜해 훈제용으로 넘긴다.

"정부 조사관들이 나와 지정된 바다에서 잡는지, 허가된 마릿수가 맞는지 수시로 승선 검사를 합니다." 번즈 씨는 매일 어획한 마릿수를 위성통신으로 보고해야 하고, 귀항하면 부두에서도 캐나다 정부요원이 나와 일일이 연어를 세어 숫자를 확인한다고 했다. 남획을 막기 위한 캐나다 정부의 감시활동이다. "정부의 철저한 관리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연어잡이를 이어 갈 수 있도록 해 줍니다. 그래서 스스로 규제를 지킵니다." 번즈 씨의 대답은 원주민들이 1년간 먹을 만큼만 연어를 잡아 수백 년 동안 캐필라노 강의 연어 자원 고갈을 막아 온 것과 같다.

◆메뉴판엔 어부의 이름과 배, 포획 방식까지 수록

번즈 씨가 안내한 밴쿠버 부둣가의 연어 훈제공장인 오션 마스터푸드는 콜드 스모킹과 핫 스모킹 두 가지 방식으로 훈제를 한다. 콜드 스모킹은 연어를 반으로 가르고 가시를 제거한 뒤 22도에서 16시간 동안 연기를 쐬는 방식. 핫 스모킹은 66도에서 4시간 동안 훈제를 하는 방식이다. 이 공장 마케팅 매니저 그랜트 스넬(62) 씨는 "가장 좋은 상품은 인근 시애틀의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으로 보낸다"고 했다. 밴쿠버에는 배에서 직접 생선을 파는 스티븐슨 마켓이 있다. 하루 1만~2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이곳에선 그날 잡은 신선한 생선을 살 수 있다.

번즈 씨는 굵은 목재가 둥둥 떠 있는 프레이저 강변의 '피어(PIER) 73'이라는 레스토랑에 연어를 납품한다. 번즈 씨가 들어서자 매니저 켈리 유일(Kelly Yuill) 씨가 포옹하면서 맞이했다. 가족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번즈 씨가 공급해 주는 품질 좋은 연어 덕분에 우리가 좋은 스테이크를 만들 수 있어요." 주방장 모르간 레너(Morgan Lechner) 씨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메뉴판을 펼쳐보였다. 연어 요리 메뉴판에는 번즈 씨의 낡은 연어 낚싯배 이름인 프로바이더가 메뉴 이름이 돼 있다. 주변을 둘러보니 액자 속에서 번즈 씨가 빙그레 웃고 있다. 조금 전 부둣가에서 본 낡은 연어잡이 배도 흑백 사진으로 액자 속에 들어 있다. 이는 연어뿐만 아니라 연어를 남획하지 않는 어로 방식도 보호하려는 밴쿠버 특유의 연어 유통 시스템이다. 켈리 씨는 "공동체를 생각하는 밴쿠버 시민들은 레스토랑에서 먹는 연어 한 조각도 누가 어떻게 잡았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고 했다. 그래서 메뉴판에 어부 이름과 연어잡이 배 이름, 연어 잡는 방식까지 표시해 두고 있단다. 스모크 프로바이더 샐몬은 연어 야채 샌드위치다. 크림치즈로 바삭하게 구운 배롤빵에다 타라곤 이파리에 양고추냉이를 넣고 훈제 연어를 얹었다. 쫀득한 훈제 연어살과 바삭한 빵이 환상적인 식감과 감칠맛을 낸다. 빵가루를 섞은 밥에 올리브유로 볶아 낸 토마토와 깍지콩, 시금치를 곁들이고 바비큐 그릴에 구운 스프링 연어 한 토막을 얹은 프로바이더 샐몬 스테이크도 일품이다. 연어를 잡은 어부와 같이 먹어서 그런지 부드러운 연어살의 감칠맛이 더욱 깊게 느껴진다. 남획 방지를 위한 당국의 철저한 감시와 밴쿠버 사람들의 연어 사랑은 밴쿠버 연어를 보호하는 것은 물론 세계적인 명성을 이어가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번즈 씨가 이 같은 방식으로 연어를 공급하는 레스토랑은 밴쿠버 시내에 스무 곳이나 된다.

◆매년 9월 밴쿠버 레스토랑은 일제히 연어 요리 개시

밴쿠버 서부지역 폴크스톤에 있는 연어 요리 전문점 더 샐몬 하우스(The salmon house)는 캐나다 인디언 누차눌트족이 나무판을 이용해 연어를 구워 먹던 전통 조리방식을 기본으로 현대식 레시피를 개발했다. 앨더그릴 스프링 샐몬 스테이크라는 이 집 메뉴는 물 먹인 앨더 나무 판때기에 연어를 올리고 그릴에 구워 낸다. 앨더 나무 향이 연어살에 은은하게 밴 캐나다 전통 연어구이 맛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어 요리 레스토랑이 됐다.

"연어에는 소금이 들어가야 비린내가 덜하고 연어 특유의 향미를 뿜어 냅니다." 동행한 연어전문 요리사인 교포 심민규(31) 씨는 "스프링 연어는 지방 함량이 높아 속아이 연어보다 육질이 부드럽고 훨씬 더 깊은 맛이 있다"고 설명했다.

앨더그릴 스프링 샐몬 스테이크는 새우살과 게살을 으깨어 부추와 볶은 뒤 연어 스테이크 위에 얹었다. 올리브유를 발라 앨더판에 구운 핑크색의 연어살이 고소하고 향긋하다. 연어 껍질도 말랑말랑하게 구워져 식감이 부드럽다. 버터에 구운 노랑애호박이나 감자도 모두 연어 맛이다. 그런데 향채를 쓴 듯 동남아와 중국풍의 음식 향도 슬쩍 비쳐난다.

"밴쿠버에는 절반이 아시아계 사람입니다. 그래서 홍쿠버라고도 하지요." 심 씨는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아시아계 사람들이 아시아 특유의 음식 스타일을 원하기 때문에 밴쿠버에는 연어 스테이크는 물론, 소고기 스테이크에도 아시아풍 소스나 향채를 쓰는 레스토랑이 흔하다"고 했다.

매년 9월 연어가 강으로 올라올 즈음이면 밴쿠버 레스토랑은 일제히 연어 요리를 시작한다. 여름 동안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캐필라노 강은 수천 마리의 연어떼로 가득 차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밴쿠버는 연어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통조림 등 연어가공공장도 덩달아 호경기를 맞고 연어 요리와 연어 목공예품도 불티나게 팔린다. 밴쿠버 북부 클리브랜드댐 아래 캐필라노 강가의 연어 인공부화장에도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다. 울창한 숲이 인상적인 이곳은 주립공원으로 연어가 급류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연어부화장 연구원 제레미 스미스 씨는"치누크 연어 60만 마리, 코호 연어 60만 마리, 스틸헤드 연어 1만5천 마리의 치어를 생산해 매년 방류하고 있다"며 "치누크 연어의 경우 2%인 1만2천 마리가 모천으로 찾아오고, 코호연어는 방류량의 12%인 7만2천 마리가 돌아 온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도 해방 직후만 해도 울진 왕피천에서 작살로 하루에 연어 200~300마리를 잡을 정도로 회귀하는 연어가 많았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사진작가 차종학 cym47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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