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 天時地利人和〈천시지리인화〉

다가오는 새해는 조선 정부가 정치'경제'사회 등의 모든 제도에 대한 근대적인 개혁을 시도한 갑오경장이 일어난 지 120년째 되는 해다. 불과 한 세기 남짓한 기간이었지만 우리나라는 전근대사회에서 세계 경제 10위권의 반열에 올라설 정도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남북 분단이라는 뼈아픈 족쇄가 우리를 옥죄고 있으며, 최근의 세계경제 동향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미국의 양적 완화 축소로 거품이 꺼진 이후의 세계경제는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며 우리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예단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3, 4년간 침체상을 보이고 있는 대구경북 경제의 앞날은 더욱 불투명하다.

이런 상황 속에 내년 6월 4일에는 지방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자치단체장과 의회 의원 후보들이 그 나름의 목적과 포부를 갖고 주민의 의사를 묻게 된다. 어려운 시대적 여건을 극복하고 지역 발전을 이끌어 낼 유능하고 소명 의식이 높은 사람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여기서 지역의 대표자들을 뽑을 때 주민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몇 가지 사항을 따져보자.

우리나라는 정치적 분권화가 극단적으로 이루어져 있는 나라이다. 구청장, 구의회 의원들까지 직선제를 하는 나라는 보기 드물다. 그러나 지역의 선출직 인사들은 정치적 행위를 할 여지가 별로 없다. 같은 선출직이라도 국회의원들과는 임무와 역할이 다르다. 정치의 주역은 국회의원들이고, 지자체의 장이나 의원들은 지역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알파요, 오메가다. 지역경제의 성장과 주민 복지 수준의 향상에 매진해야 한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돈이 들기 때문이다. 쓸 곳은 많은데 대부분의 비수도권 지자체들의 재정은 턱없이 부족하다. 혹자는 재정분권이 그 답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재정분권은 잘사는 지역에 유리하고 못사는 지역엔 불리하다.

지역 균형발전을 저해할 소지가 크다. 재정분권을 절대적 가치인 양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권한을 지역발전이나 주민 행복보다 더 중시하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다. 지역의 세원(稅源)이 크든 작든 돈을 거둬들이고 쓰는 권한이 커지기 때문이다.

재정분권을 논할 때는 지방재정 조정제도와 재정 운용의 자율성을 구분해야 한다. 지방재정 조정제도는 잘사는 지역에서 국가가 세금을 거두어 못사는 지역에 교부 또는 보조하는 것이다.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제도이다. 전국이 골고루 잘살게 되면 자연히 그 중요성이 줄어들게 되어 있다. 반면 재정 운용의 자율성은 지자체의 정책 및 행정 역량과 관련된 것이다. 지자체가 중앙정부에 비해 더 잘할 수 있는 일은 당연히 지자체가 맡아야 한다.

이런 일들이 점점 더 늘어날 것이고, 그에 맞춰 지자체 재정 운영의 자율성도 확대되어야 한다. 중앙정부는 지자체가 할 수 없는 일들만 하면 된다. 이것을 보충원리(subsidiarity principle)라 한다.

지자체 재정 운용의 자율성 확대와 더불어 이에 대한 감시 역량도 강화되어야 한다. 지리적 범위가 좁을수록 사람들 간의 학연, 혈연관계가 한층 밀접해질 수밖에 없고 그러한 관계가 돈을 배분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지자체의 업무를 감시하기 위해 지역 의회가 있지만 그 의원들 또한 이해관계에 얽혀 있지 말란 법이 없다. 재정 운용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것이 필수불가결하다.

결론은 이렇다. 지역의 문제점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해법을 갖고 있으며, 지방재정 조정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지역에 보다 많은 예산을 배정받고, 이를 자율적이되 공평무사하게 지역 발전을 위해 쓸 수 있는 사람이 선출되어야 한다. 유권자들은 후보자들이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허울 좋은 정치적 공약을 내세우는지, 지역을 위한 실천적 정책 공약을 제시하는지 신중히 판단하여 깨끗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

2385년 전에 태어난 맹자는 천시지리인화(天時地利人和)라고 하였다. 하늘의 때는 땅의 이점을 이기지 못하고 땅의 이점은 사람 사이의 조화를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다. 최근의 시대적 여건이 어렵더라도 인화를 바탕으로 땅을 잘 이용하면 능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속에 이를 체득한 지역의 지도자들이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장재홍/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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