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순 교수의 이야기 콘서트]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

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 가운데 하나다. 들어보면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슬픔을 머금은 듯한 선율은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눈가를 촉촉이 적시기도 한다. 전쟁 영화의 배경 음악으로 사랑받으면서 고통과 좌절, 이별 같은 애타고 슬픈 장면을 우리에게 극적으로 대변해주기 때문이다. 몇 년 전 TV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도 배경음악으로 나와 우리에게는 더욱 친숙하다.

바로크 시대의 이탈리아 작곡가 알비노니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이 작품에는 사연이 있다. 그 악보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에야 햇빛을 보았다. 음악학자 지아조토가 독일 드레스덴의 한 박물관에 방치된 서류 더미에서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단지 몇 마디의 선율만 남은 스케치에 불과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아조토가 g단조의 오르간이 딸린 현악 합주 작품으로 완성한 것이다. 드레스덴도 원래 바로크의 화려함을 간직한 아름다운 도시였다. 그러나 연합군의 폭격으로 시가지가 90% 이상이 파괴되어 초토화된 곳이다. 그런 폐허 속에서 이 곡이 발견되었으니 그것은 좌절한 시민들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었다. 그리고 그 희망은 드레스덴을 다시금 세계 최고의 예술 도시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로부터 50여 년 가까이 지난 1992년, 야만적 학살이 보스니아 내전에서 일어났다. 고요한 도시 사라예보는 세르비아계 민병대의 인간 사냥터가 되었다. 죽음의 공포가 일상이 되다시피 했다. 그날도 빵을 구하기 위해 모여든 시민들에게 포탄이 발사되었다. 현장에서 무려 22명이 목숨을 잃었다. 거리는 순식간에 피바다가 되었다.

사고 다음 날, 처참해진 그 거리에 한 사내가 첼로를 들고 나타났다. 스마일로비치(Vedran Smai lovic)였다. 그가 연주를 시작한 곡은 장엄하면서도 애절했다. 였다. 사라예보 필하모닉의 단원이었던 그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루하루를 고단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죽음의 현장을 목격한 순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된 것이다. 언제 또 포탄이 날아올지 모르는 화염 속에서, 죽은 자들의 숫자만큼인 22일 동안 그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 자리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 영혼들에게 음악을 바쳤다. 모여든 시민들은 몸을 숨긴 채 그의 연주를 들었다. 화염에 쌓인 전쟁터가 장엄한 레퀴엠이 울리는 연주회장이 된 것이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영국의 작곡가 와일드(David Wilde)는 그의 형제애에 대한 존경을 담아 또 하나의 슬픈 음악 를 작곡했다. 인간 의식의 저 심연까지 내려간 듯 무거운 저음의 유장미가 흐르는 무반주곡이다. 요요마가 1994년 4월 영국의 맨체스터 국제 첼로축전에서 이 곡을 처음으로 선보이던 날,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이던 청중석 한쪽 구석에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한 사나이가 있었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 스마일로비치였다. 요요마는 말없이 그를 무대 중앙으로 불러내어 함께 껴안고 울었다. 청중들은 기립 박수를 보내며 그들에게 최고의 경의를 표했다. 사라예보가 전쟁으로 말미암아 무너졌으나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살아있는 도시임을 온 세상에 선포하는 순간이었다.

현충일이 지나고 이제 곧 한국전쟁 64돌을 맞는다. 근현대사에서 비극의 중심지였던 대구의 아픔을 기억하게 된다. 우리는 너무 많은 상처를 입고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 치유의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세월은 무심하게 흘렀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으로 모두가 슬픔에 허우적거릴 때 우리의 귓가를 두드리는 자그마한 위로가 있었다. 인디언의 시(詩)를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라는 노래였다. 거대한 절망에 맞선 인간 정신의 승리가 음악으로 말미암아 빛나는 순간이었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생명에 대한 경외심으로 드레스덴과 사라예보가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또 하나의'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이 이제는 대구에서 울려 퍼질 차례다.

계명대학교 한국문화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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