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불감증<不感症>

우리는 소위 '불감증' 시대에 살고 있다. 안전불감증, 도덕불감증, 안보불감증, 건강불감증 등 다양한 불감증들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불감증은 '감각이 둔하거나 익숙해져서 별다른 느낌을 갖지 못하는 일'이란 뜻이지만, 원래 의학용어로 '성욕은 있으나 성교에 따른 쾌감이 적거나 전혀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영어로 불감증을 뜻하는 'sexual anesthesia'에서 'anesthesia'는 '마취, 무감각증'이라는 뜻이다. 이는 희랍어인 an(non)과 aesthesia(perception, feeling)의 복합어로 한마디로 '감각의 상실'이다. 불행히도 이러한 불감증은 개인을 뛰어넘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의 몸도 마찬가지다. 몸의 감각은 무뎌지거나 잃어버리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지난겨울 70대 어르신이 요통과 다리 저림, 무감각을 호소하며 진료실을 찾았다. 진단 결과 요추부 척추 협착증이었다. 그런데 진찰 도중 엉덩이 쪽에 화상으로 인한 심한 물집과 염증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뜨거운 방바닥에 누워 자다가 화상을 입은 것이었다. 심한 척추 협착증 때문에 엉덩이의 뜨거운 감각을 잘 느끼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평소 척추 협착증 증세가 있었을 때 조기에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받았더라면 무감각으로 인한 화상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생각하기도 싫은 지하철 화재와 가스 폭발 참사로 대구는 많은 인명과 재산피해를 입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관계법령을 만들고 시스템을 고쳤지만 지난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고, 올해도 의정부 아파트 화재 사건 등 대형 안전사고들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나만 하는 짓이 아닌데' '지금까지 아무런 일 없었는데'라고 생각하는 도덕불감증과 안전불감증의 합작품이다.

최근에는 소위 명문대 교수들의 학생 성추행사건이 끊임없이 터져 나온다. 교수라는 직위를 이용해 학생들의 인격을 짓밟는 파렴치한 일들이 독버섯처럼 퍼져 있음이 드러난 사건들이다. 이는 사회지도층의 도덕불감증이 어느 정도인지를 대변해 준다.

우리나라에 전반적으로 만연해 있는 '불감증'은 나라를 뒷걸음치게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가 올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달러가 넘을 것이 확실하지만 선진국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거대한 고소득 국가인 중동이나 경제 규모가 미국 다음으로 큰 중국을 선진국이라 부르지 않는 것과 같다. 선진국은 경제뿐만이 아니라 정치'사회'문화를 망라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해 정의 내리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하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병증'(病症) 상태가 돼버린 온갖 '불감증'을 하루속히 치유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감각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개개인의 노력과 사고의 변환으로 건강한 사회, 선진국형 나라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상곤 대구파티마병원

마취통증의학과 통증크리닉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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