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허긍열의 알프스 기행] 알파인 호수 '락 세서리'

해발 2,000m 쪽빛 호수 그 너머 만년설의 풍광 짧은 여름의 파노라마

그 많던 눈과 얼음이 다 녹은 7월의 세서리 호수 너머로 몽블랑 산군의 파노라마가 펼쳐져 있다.
그 많던 눈과 얼음이 다 녹은 7월의 세서리 호수 너머로 몽블랑 산군의 파노라마가 펼쳐져 있다.
알프스의 봄은 늦다. 해발 2,000m대에 위치한 세서리 호수는 6월에야 가장자리부터 녹는다
알프스의 봄은 늦다. 해발 2,000m대에 위치한 세서리 호수는 6월에야 가장자리부터 녹는다
호수 주변에 살고 있는 알프스의 산양 샤모아.
호수 주변에 살고 있는 알프스의 산양 샤모아.

알프스의 봄은 늦게 찾아온다. 고도와 위도가 한국보다 높기 때문이다. 날로 따뜻해지는 봄볕과 훈풍이 알프스의 산록에 쌓인 눈을 녹이고, 여전히 찬 봄밤의 서리가 힘을 합쳐 얼리고 녹이기를 반복하면서 겨우내 눈에 짓눌렸던 대지를 들쑤신다. 반년이나 되는 긴긴 겨울 동안 쌓인 눈이 이렇게 녹아 대지의 맨살이 드러나려면 4월이 지나야 되는데, 이마저도 해발 1,000m 고지의 양지바른 곳에서나 가능하다. 2,000m 고지까지 봄기운이 전해지려면 또다시 한두 달은 지나야 한다. 알프스 자락을 산행하는 트레커들은 이 눈들이 녹기 시작하는 6월부터 많아지는데, 2,000m 지대의 알파인 호수들이 녹기 시작하는 때이기도 하다. 긴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알파인 호수들은 가장자리부터 기지개를 켠다. 쪽빛을 띠며 녹은 알파인 지대의 호수들 너머로 보이는 만년설의 풍광은 알프스 트레킹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진풍경이다. 이럴 때는 몽블랑 산군의 웅장한 파노라마를 가장 멋있게 품어주는 락 세서리(Lac Cheserys'세서리 호수'2,100m)에 찾아가 본다.

세서리 호수로 가는 길은 크게 세 군데 있는데, 몽떼 고개(1,461m)에서 출발하는 게 가장 좋다. 다른 두 길에 비해 한두 시간 더 걸리지만 샤모니 계곡 북측 끄트머리에서 시작해 몽블랑 산군을 아래에 두고 남측으로 걷기에 파노라마 풍광을 가슴에 품을 수 있다.

샤모니에서 몽떼 고개행 버스는 여름 시즌에 한 시간에 한 대 있으며, 산악열차 몽블랑 익스프레스를 이용할 경우 몽록 마을에서 내리면 된다. 몽록 마을 뒤 산길로 돌아 오르면 아름다운 통나무집들 너머로 침봉들이 솟아 있다. 15분가량 오솔길을 걸으면 몽떼 고개에 이른다. 이곳은 알프스에서 야생 허브가 가장 많이 자라는데 여름이면 융단처럼 깔린 야생화 화원을 이룬다. 고갯마루에는 휴게소 겸 전시실이 있다. 이제부터 오를 세서리 호수를 포함한 주변의 에귀 루즈 자연보호지역에서 서식하는 동식물 및 광물의 표본과 자료 등이 있어 둘러볼 만하다.

한편 아르장띠에르 마을에서 오르는 길의 경우 마을 외곽 전나무 숲을 한 시간 오르면 바위장벽이 나타난다. 이 지역 산악인들이 암벽등반을 즐기는 곳이다. 바위의 급사면에 설치된 철사다리를 타고 반 시간 오르면 사거리에 이른다. 몽떼 고개와 플레제르(1,877m)에서 오르는 길과 만나는 곳으로 여기서 큰길을 따라 위로 반 시간 오르면 세서리 호수가 나타난다. 세 길 중 가장 높이 오르는 힘든 길이지만 아름다운 세서리 호수가 땀의 대가를 충분히 지불해줄 것이다. 세서리 호수에 이르는 세 번째 길은 플레제르 전망대에서 출발하는데, 가장 편하고 짧다. 샤모니 바로 윗마을 레 프라(les Praz)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10분이면 도착하는 플레제르는 꽃의 언덕이라는 이름처럼 주변에 온갖 야생화들이 지천이다. 이 전망대에서는 샤모니 계곡 바로 건너편의 메르 더 그라스 빙하가 샤모니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모습이 압권이며 빙하를 호위하듯 솟아 있는 침봉들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 메르 더 그라스 빙하 위의 레쇼 빙하 깊숙이 숨어 있는, 알프스의 3대 북벽 중 하나인 그랑드 조라스의 위엄에 압도당하는 곳이기도 하다.

플레제르 전망대에서 북측으로 난 산판도로를 따라 200m 정도 가면 휴게소가 있는데, 그 너머로 오솔길이 이어진다. 한동안 완만하게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면 큰 폭포가 있는 개울이 나타난다. 통나무 다리가 놓여 있으며 주변에는 많은 종류의 야생화들이 피기에 필자가 촬영을 위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 주변에서는 알프스의 산양들도 종종 만나곤 한다. 오르막을 조금 오르면 작은 오두막이 나타난다. 이제까지와는 달리 오두막에서부터 급사면을 오르면 몽떼 고개와 아르장띠에르 마을에서 오르는 길과 만나는 사거리가 나타난다.

세서리 호수에 오르는 길은 이렇게 세 군데가 있지만 몽떼 고개로 올라 플레제르 전망대로 하산하면 가장 좋다. 몽블랑 산군의 최북단 뚜르봉에서부터 남단의 몽블랑 정상까지 4,000m 이상의 봉우리 7개뿐 아니라 3,000m급 침봉들도 한눈에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몽떼 고개의 전시실 옆에서 시작한 등산로는 곧장 오르막이다. 좌측 계곡 건너편의 뚜르 빙하를 보며 한 시간 정도 오르면 나무들의 키가 작아지고 길도 완만해진다. 이제부터 바로 건너편에 아르장띠에르 빙하를 지척에 두고 몽블랑 산군의 파노라마를 지켜보며 완만한 길을 따라 걷는다. 좌측 뒤의 뚜르 빙하에서부터 아르장띠에르 빙하, 메르 더 그라스, 보송 빙하 등 도도한 빙하의 바다가 은빛 물결로 흐르고 그 위로 알프스의 제왕 몽블랑을 비롯해 하늘을 향해 치솟은 날카로운 화강암 침봉들이 도열해 있다. 알프스의 만년설을 지켜보며 한 시간을 더 걸어 이르는 삼거리에서는 위쪽으로 가야 한다. 락 세서리는 하나의 호수가 아니라 크고 작은 여러 호수들이 모여 있는 것을 통칭해서 부르는 이름이다. 맨 위에 있는 호수가 가장 크지만 아래쪽의 작은 호수들도 둘러볼 만하다. 대여섯 개 되는 아래쪽 호수들은 시즌 초에는 물이 많지만 8월 중순경 가물 때는 말라 없어지는 호수들도 몇 개 있다.

산행 안내=제네바 공항에서 샤모니까지 차량으로 한 시간 걸리며 샤모니에서 레 프라는 관광객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시내버스로 10분, 아르장띠에르는 20분, 몽떼 고개는 30분 정도 소요된다. 어느 코스를 택하든 반나절이면 세서리 호수를 둘러볼 수 있다. 시간을 할애하여 한 시간 더 위로 이어진 길을 따라 락 블랑까지 둘러보고서 앙덱스나 플레제르로 이동해 케이블카로 하산해도 좋다. 케이블카 막차시간은 오후 4시 30분이다. 한편 플레제르와 락 블랑에 산장이 있어 알프스의 산정에서 하룻밤 묵어볼 만하다. 석식 및 조식 포함 1박 숙박료는 55유로 정도다.

알프스 전문 산악인 vallo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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