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태맹의 시와함께] 그늘의 맛

이규리(1955~ )

한 복숭 나무에 어떤 열매는 붉고 어떤 열매는 파랗다

넌 누굴 닮아 그 모양이니?

그때마다 더 파래지곤 했다

어떤 이는 손바닥 하나를 뒤집어 새를 날리고 장미를 꺼내지만

손바닥을 뒤집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대신 그늘을 먼저 배우는 거랄까

그늘의 맛, 그러니

복숭이 간신히 내놓은 까슬한 뺨을

꾹꾹 눌러 확인하지 마라

여기까지 먼 길,

파란 열매는 얼마나 가혹한 자책이겠느냐

(전문.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문학동네. 2014)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생활로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어떤 열매는 붉고 어떤 열매는 파랗다. 이 다름을 동시에 긍정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은 철학이나 윤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정치의 문제이기도 하다. 차별은 통치의 결과라기보다는 시작점이다. 차별을 통해서 배제와 흡수의 통치술이 발휘되는 것이다. 가령 장애를 비정상으로 분리해 냄으로써 정상의 경계를 설정하고, 경계 밖으로 밀려난 장애는 차별과 시혜의 통치술로 조정됨으로써 정치의 '정상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어디 장애만 그러한가? 이주노동자나 성적 차이에 대한 여러 차별은 '정상성'이라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유지하는 데 이용되고 '다름'은 정치에서 용인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시인은 차별 속에서 익어가는 삶들이 가진 힘을 '그늘의 맛'이라고 표현한다. 그늘의 맛은 달콤함만은 아니다. 그것은 가혹한 자책과 고통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그늘의 힘으로 언젠가 열매들이 달콤하게 익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도 어떻게 보면 이데올로기에 다름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도무지 좁힐 수 없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것을 받아들여야 우리는 그들 모두와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진정한 정치란 그 모든 차이를 긍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늘의 맛'을 이해하는 풍부한 상상력은 그 첫발일 터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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