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 대구는 온통 영남권 신공항 얘기로 들끓었다. 식당이든, 술집이든, 지하철이든, 어디를 가나 신공항 얘기뿐이었다. 신공항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이렇게 대단했나 싶을 정도였다. 언론에서도 날마다 신공항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매일신문은 지난 22일 자 1면을 백지(白紙)로 발행했다. 정부의 신공항 백지화 발표에 따른 강력한 항의의 차원이었다. 그날 서울 근무 때 알고 지냈던 서울시민들의 전화가 쇄도했다. 대부분 잘했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최일선에 섰던 사람들이 박 대통령을 겨냥해 백지로 맞선 신문 1면에 대해 찬사를 보낸 것이다. 수도권 언론들도 이 사실을 기사로 보도하면서 대구경북민의 분노를 알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점이 있다. 많은 대구경북 지역민들이 신공항 무산에 대해 분노를 하고, 열분을 토하고 있지만 정작 여의도 정치권에선 조용하다는 점이다.
지난 25일 대구서 열린 '남부권(영남권) 신공항 백지화 진상 규명 촉구대회'엔 선수(選數)가 가장 높은 4선 중진 의원들이 약속이나 한 듯 개인적인 사정을 내세우며 불참했다. 27일 대구시와 경상북도가 대구상공회의소 대강당에서 연 '신공항 입지 결정에 따른 대구경북 시'도민 대표 간담회'에는 대구 4명, 경북 2명의 국회의원만 참석했다. 이날 간담회 한 참석자는 "대구경북 국회의원들이 앞장서 지역민의 울분을 듣고 풀어줘야 하는데, 오히려 관심이 점점 식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를 두고 한 시민은 "지역민들을 대변하라고 뽑아준 국회의원들이 '강 건너 불구경'하듯 신공항 사태를 보는 것은 직무유기와 다를 바 없다"는 얘기도 했다.
지난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쪼르르 달려 내려와 시민들 앞에서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한 번만 용서해달라. 정말 열심히 잘하겠다"면서 석고대죄하던 그날의 '열정'은 어디로 갔을까. 정치적 쇼맨십에 따른 연기였다면, 진정 영화상 주연상 감이다.
그들이 매번 저러는 것은 우리 책임일지도 모른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진대, 우리는 매번 그들의 연기에 속아 넘어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난 총선에서 '무조건 1번'이라는 지역 민심이 변한 것을 목격했다면서 조금의 희망을 발견했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이번 신공항 사태를 통해 지역 민심은 극도로 변하고 있음이 감지된다. 절대 성역이었던 박 대통령에 대한 비난이 들끓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신의를 저버리고 지역을 그저 이용대상으로만 생각했다는 것에 대한 반감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했다. 믿었던 정부에게 신공항 무산이라는 철퇴를 맞았고, 한 표를 던졌던 국회의원들에게는 무관심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우리가 변해야 할 차례다. 믿음과 의리를 아낌없이 줬는데도 우리를 호구(虎口)처럼 대한다면 우리가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다음 선거에서는 좀 더 성숙해진 대구경북민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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