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공동체에 말을 걸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습관처럼 아이 등교 준비를 돕고 출근을 서두른다. 늘 다니는 출근길에 익숙한 풍경이 보인다. 늘 같은 시간에 같은 곳을 향하는지라 신호가 바뀌기도 전에 차는 본능처럼 정지선에 멈추었다. 차창 밖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이 보인다.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을 풍경처럼 보고 있던 찰나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 아이의 손을 잡은 여인에게 시선이 멈추었다. 엄마와 아들인 것 같은데 조금 이상했다. 엄마가 다 큰 아들의 손을 자꾸만 앞으로 잡아끌며 걷고 있었다. 반면 뒤에 처진 아들은 발이 헛돌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만큼 제자리를 맴돌았다.

왜 저렇게 걸을까? 자연스럽게 눈이 아이의 얼굴로 향했다. 아하! 아이는 몸이 불편한 장애아였다. 파란 불이 켜져 있을 동안 어서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데 아들은 저 먼 하늘 어딘가를 바라볼 뿐 엄마의 마음은 바라보지 못했다.

매일 이 길을 오고 갔지만 오늘 처음 모자(母子)를 보았다. 아마 오늘 이전에도 그들은 수많은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에 이 길을 지나갔으리라. 엄마는 수없이 이 길을 오가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언젠가 몸이 불편한 50대의 자식을 보살피는 80대 노모의 인터뷰를 들었다. 인터뷰 끝에 기자가 노모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노모는 주저 없이 오래 살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이 오래 살아야 아픈 자식을 거두는데, 죽고 나면 자식이 어찌 될까 생각만 해도 무섭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는 오랫동안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아 왔다. 주인공 모모는 부모도 마땅한 거처도 없이 광장 한 귀퉁이에 살던 떠돌이 소녀였다. 소녀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지만, 이웃들과 행복하게 살았다. 만약 지금 여기에 모모와 같은 소녀가 있다면 그 소녀는 동화 속에서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질문을 바꿔서 엄마가 없어도 아들은 누군가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을까?

요즘 16개의 초중고 인문학 서당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인문학 독서 나눔 지역 예선이 한창 진행 중이다. 올해는 '공동체에게 말을 걸다'를 주제로 친구들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을 통해 서로 생각을 나누는데, 짬을 내어 초등학생들의 발표를 보게 되었다. 발표 말미에 한 아이가 청중을 보며 말했다.

'행복한 공동체가 되려면 서로에 대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자 지금부터라도 관심 가져 주실 거지요?'

오늘 나는 나에게 묻는다. '다른 이에게 관심 가져 주실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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