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무역 전쟁

2009년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미국은 국제통화기금(IMF)이 각국의 내수 진작 노력을 조사해 미흡한 국가에는 정책 시정을 요구하는 '동료감시제'를 제안했다. 취지는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해 관세 인상 대신 무역 흑자국의 내수시장을 육성하자는 것이다. 영국, 캐나다, 중국 등 주요국들이 원칙적으로 공감했으나 독일의 반대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미국이 이런 제안을 한 배경에는 관세 보복이 대공황으로 이어졌던 실패의 역사가 있다. 그 도화선은 당시 미 공화당 소속 리드 스무트와 윌리스 할리 의원이 주도해 만든 '스무트-할리 법'이었다. 평균 59%, 최고 400%의 관세를 매길 수 있는 이 법의 목적은 공급 과잉에 시달리는 농민 지원이었다. 하지만 관세폭탄은 농산물에 그치지 않았다. 농산물 보호에 자극받은 제조업자들도 같은 조치를 요구해 관철시킨 것이다. 그 결과 1930년 6월 이 법이 발효되면서 적용 대상 품목은 물경(勿驚) 2만여 개로 늘었다.

반대의 목소리도 높았다. 어빙 피셔 등 경제학자 1천28명이 후버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촉구했고, 헨리 포드 등 기업가들도 이 법이 상대국의 보복을 불러 미국의 수출을 막을 것이라며 반대했다. 하지만 당시 후버 대통령은 듣지 않았다.

결과는 파국이었다. 영국 등 23개국의 보복으로 미국의 수출은 1929년 52억달러에서 1933년 16억달러로 쪼그라들면서 국내총생산(GDP)은 50% 이상 감소했다. 같은 기간 세계 교역량도 3분의 2가 증발되면서 세계 경제도 함께 망가졌다. 1929년 10월 주가 대폭락으로 촉발된 공황이 전 세계로 파급된 것이다. '월스트리트 제국'을 쓴 저명한 경제사가 존 스틸 고든이 "대공황은 1929년 10월 29일 주가 대폭락이 아니라 1930년 6월 17일 스무트-할리 법에서 시작됐다"고 단언한 이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역전쟁' 선포에 폴 크루그먼, 로버트 실러, 제프리 색스 등 미국 내 석학들이 "무역전쟁에서 미국이 결코 이길 수 없으며, 세계 경제는 엄청난 시련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표현만 다를 뿐 스무트-할리 법을 "멍청함과 탐욕에서 비롯된 끔찍하고 해로운 결과물"이라고 한 언론인 월터 리프먼의 비판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트럼프는 EU(유럽연합)와 중국의 보복 경고에 "추가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며 전의를 불태운다. 정말로 멍청하고 탐욕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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