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명박 전 대통령 檢 출두] 고향 주민 "열 받아 죽겠다, 얼른 가소 마"

"잡아먹으려 드는데 못 당해, 대통령 하려는 사람 없을 것"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석한 14일 오전 이 전 대통령 고향마을인 포항시 북구 흥해읍 덕실마을 회관, 썰렁한 분위기 속에 한 주민이 이 전 대통령 소환 TV 생중계를 보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석한 14일 오전 이 전 대통령 고향마을인 포항시 북구 흥해읍 덕실마을 회관, 썰렁한 분위기 속에 한 주민이 이 전 대통령 소환 TV 생중계를 보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이 전 대통령 소환 장면을 시청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열 받아 죽겠는데, 얼른 문 닫고 가소 마. 아무 얘기도 안 할랍니다."

14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성장기를 보낸 포항 북구 흥해읍 덕성1리 덕실마을은 한산하다 못해 썰렁했다. 집집이 문앞에 신발은 있었지만, 밖으로 다니는 사람을 좀처럼 보기 어려웠다. 인기척이 들리는 곳은 마을회관뿐이었다. TV 앞에 모인 노인 4명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했다. TV 속에는 이 전 대통령이 뇌물수수 등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하는 장면이 잡혔다.

"약한 쪽이 아무리 억울하다고 얘기해도 통할 세상이가. 잡아먹으려고 달려드는데 당해낼 장사가 있겠나"라며 70대 노인이 먼저 입을 뗐다. 4명 중 젊은 축인 60대 여성은 "대통령만 하면 다 조사받고 처벌받는데, 앞으로 대통령 하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다. 너무 저러면 안 되는데 어쩌려고 저러노"라고 말을 받았다. 그러자 제일 연장자로 보이는 80대 노인이 "TV 채널 바꾸든가 끄든가 해라. 정치보복이고 뭐고 속 시끄럽다. 대통령 되고 나서 마을에 뭘 그리해준 게 있다고. 그만 얘기하고 고스톱이나 치자"며 버럭 역정을 냈다. 조용히 있던 70대 노인이 채널을 바꾸며 십원짜리와 화투를 꺼내와 자리를 폈다. 이들은 더는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화투를 만지던 한 노인은 "대통령 대 자도 꺼내지 말아달라. 모두 신경이 곤두서 대화를 나눌 만한 상황이 아니다"며 마을회관 문을 닫았다.

이 전 대통령의 '고향집' 안내판이 서 있는 사촌 형수 집 분위기도 무거웠다. 빛바랜 안내판이 이날 덕실마을 분위기와 묘하게 닮아 있었다. 이 전 대통령과 5촌이라는 50대 남성은 덕실마을은 주민 80%가 이 전 대통령과 같은 성씨인 경주 이씨 집성촌이라고 했다. 이 남성은 "요즘 들어 부쩍 찾아오는 사람들이 줄었다. 농번기라 주민들이 일하러 가고 해서, 분위기가 더욱 한산하게 느껴질 것"이라며 "친인척들 모두 검찰에 출석한 이 전 대통령을 착잡한 심정으로 지켜봤다. 검찰조사가 끝나봐야 하겠지만, 정치보복이 없을 것이라고 했던 정부의 말을 앞으로는 믿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덕실마을 방문객은 이 전 대통령이 취임하던 2008년 48만 명에 달했지만, 퇴임 이후 발길이 점차 끊기면서 지난해는 11만 명을 기록했다.

이 전 대통령이 살았던 '생가터'에는 방문객 1명이 여기저기 사진을 찍는 모습이 보였다. 방문객은 이 전 대통령의 어릴 적 사진 등이 큼직하게 붙어 있던 홍보판도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았다. 홍보판은 절반 이상이 뜯겨 있고, 사진도 희미하게 바래 있었다.

김모(57) 씨는 "한번씩 주말이면 덕실마을에 와서 주민들과 얘기도 하고, 이 전 대통령 생가터도 둘러보고 했다. 오늘은 검찰 소환조사가 진행됐기에, 분위기가 뒤숭숭할 것 같아 들렀다"며 "역시나 평소 보이던 주민들도 안 보이고, 생가터도 인기척이 없어 사진만 몇 장 찍고 가려고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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