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포스터 감별법

커다란 현수막이 나붙기 시작했다. 봄과 함께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 돌아온 까닭이다. 이제부터 거리는 점점 더 소란해질 테고 어딘가 좀 들떠 보이는 사람들도 늘어날 것이다. 번잡한 교차로 곳곳에선 저마다 시장, 구청장, 군수, 의원이 되겠노라며, 잘할 수 있다며 길 가는 이에게 허리 굽혀 인사를 할 거고 손 내밀며 악수도 청할 것이다. 4년 전에도 그랬다. 잔칫날처럼 그걸 반기는 사람도 있었고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비켜가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악수 한 번 한다고, 눈 한 번 마주친다고 갑자기 생각이 변할 리도 없으니 쓸데없이 요란만 떤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게다가 투표하는 날, 그 북적이는 시간을 보내고도 후보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런 생각은 더 커질지 모른다. 우리가 바로 유권자임에도, 그러니까 그들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막중한 책임과 권한을 지닌 존재임에도 정작 그들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다니! 문 닫기 직전 붐비는 마트에서 엉겁결에 물건을 골라 나온 것처럼 뒤끝이 개운치 않다. 벽보도 나붙고 노래도 나오고 TV에서 토론도 했으니 나름 옥석을 가렸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나면 예문을 다 못 읽고 답을 고른 것처럼 미련이 남는다.

선거는 주어지는 대로 살아가는 사회가 아니라 내가 고르고 만들어가는 사회에서만 누릴 수 있는 잔치다. 그러니 잔칫날 제대로 즐기려면 고를 때 잘 골라야 하는데 그게 그리 간단치 않다. 최대한 정보를 얻어야 하고 짐작도 잘해야 한다. 물론, 후보를 불러서 이야기도 해보고 여행도 같이 가보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 후보 사용설명서, 즉 포스터, 현수막, 책자 등에서라도 부지런히 힌트를 찾고 답을 구해야 한다. 그래야 확성기 소리에 정신 팔려 부지불식간에 산 제품을 4년 내내 울며 겨자 먹기로 사용하는 것 같은 곤란을 겪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달랑 포스터 하나라 할지라도 거기엔 후보의 생각이 고스란히 투영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제대로 살펴야 한다. 배려 따윈 잠시 접어두고 거만한 자세와 게으른 눈으로 봐야 한다. 그래야 포스터 감별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좋은 포스터는 그런 자세, 그런 눈으로 봤음에도 시선, 마음, 생각을 차례대로 붙잡아낸다.

포스터의 힘은 결코 번득이는 아이디어나 별난 이미지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건 오직 유권자를 향한 사랑과 정성에서 생겨나고 그 정성과 사랑을 시각화해내는 전문가 또는 전문가 집단의 역량으로 이루어진다. 포스터는 읽는 게 아니라 보는 거다. 따라서 알아야 할 정보가 순차적으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 포스터, 이미지와 텍스트가 따로 노는 포스터, 빈 데 없이 이것저것 꽉꽉 채워 넣은 포스터,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포스터, 그리고 시민을 가르치려 드는 포스터를 보면 주저 없이 기분 나빠해야 한다. 가치를 말하지 않는 포스터, 좋은 말만 나열된, 그래서 더 공허한 포스터, 뭘 하겠다는데 그게 구청장이 할 일인지 아니면 시의원 또는 구의원이 할 일인지 구분을 못 하는 포스터, 심지어 이름과 사진을 다른 이로 바꾸어도 거의 티가 나지 않는 영혼 없는 포스터를 보면 망설임 없이 불쾌해해야 한다. 그건 우리를 마음에 두지 않았다는 거다. 그걸 만드는 내내 머릿속에 시민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포스터(홍보물)는 별로일지 몰라도 사람은 괜찮다는 말은 억지스럽기만 하다. 창의성은 공감하는 데서 나오고 공감은 따뜻한 마음에서 나온다. 시민을 향한 절절한 마음이 있다면 포스터가 그렇게 나올 리 없다. 그리고 그것조차 안 되는 후보가 진짜 시민이 원하는 걸 해낼 리 없고 그 정도의 안목도 없는 후보가 도시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 낼 리 없다.

권은태 (사)대구 콘텐츠플랫폼 이사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